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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어난 영화같은 이야기
1998년 2월. 조그만 소포를 우체국 창구 직원에게 건네면서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맘으로 이걸
칸느에 보낼 생각을 한걸까? 단순히 영화제에 관한 안내책자에서 '칸느'라는 글씨가 유난히 커 보였다는 이유로?'
그 동안 나는 다른 영화제에도 나의 흑백 단편영화 <스케이트>의 필름을 보내왔지만,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겁도 없이 세계최고의 영화제, 칸느라니... 어쨌거나 <스케이트>가 내가 만든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데 바람이 차갑게 몸을 감쌌다.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터벅터벅 걸어서 신문 가판대로 갔다. 백원짜리 몇 개를 내고 신문을 손에 쥐자마자 습관처럼 구직란을 펼쳤다. 까만 지면을 한 번 쓱 훑어 봤지만, 날 원할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듯했다. 그대로 신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렸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배운 거라고는 영화밖에 없는 나. 그러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거의 포기한 지금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엔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초라한 모습일 뿐이었다.
난 중학교 때부터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서 영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영화에 대한 두려움만 가득 쌓인 채 나의 진로를 두고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영화감독이 될 제목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뭔가 딴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껏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일 년 반 전, 이 단편영와, <스케이트>를 찍기로 한 그날부터 나를 감쌌던 흥분과 희열.... 오직 영화에만 열중했을 때 느꼈던 만족감.... 이 순간도 나와 영화를 이어주는 그 가느다란 감정의 끈을 다시 한번 붙잡을 수 있다면. 그러면 이렇게 주저하진 않을텐데... 그 때가 너무 그리웠다.
"카메라가 없다니요?"
"우리나라는 16밀리 동시녹음 카메라를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나마 있는 것도 대여가 된 상태라구요.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질 겁니다."
뜻밖의 말에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16밀리 동시녹음 카메라를 쓸 계획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제일 중요한
일부터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 애초에 이 영화를 시작하려고 한 게? '
난 바로 몇 주전의 상황을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사실, 이번
영화제작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한가지 생각이 발단이었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미국의 독립영화 조명부에서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 동안 학비를 내느라 돈이 한푼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그만 내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번뜩 떠오른 생각에 난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영화를 찍어야 겠어!'
그날로 곧장 미국에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와, 이곳 서울의 충무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일이 처음부터 꼬이다니.
"웬만하면 35밀리로 찍지 그러세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35밀리 카메라로 스펙터클한 영상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면 제작비가 두 배 이상 오른다. 조명일을 하면서 모든 돈으로 소극장 상영용인 16밀리 영화밖에 찍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부담이 너무
컸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스텝도 모였고, 일을 벌여 놨는데, 이제와서 포기를 선언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야.'
게다가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과 함께 동시에 떠오른 그 시놉시스만큼은 꼭 살려보고 싶었다.
'한겨울 샛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한 소녀. 빙글 돌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한참을 지켜보던 한 소년이 다가와 소녀를 일으켜 준다. 소년은 나무 막대기로 얼음 위에 글씨를 쓴다.
'너 이름이 뭐니?' "보영이요" 그러나 소년은 알아듣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로 웅얼거린다. 소년이 청각장애인임을 알게 된 소녀는 당황해서
스케이트를 버려둔 채 황급히 달아난다. 나중에 소녀는 미안한 마음에 샛강으로 돌아와보지만 소년은 없다. 스케이트만 남아있을 뿐.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펼쳐지는 흑백의 영상들... 이제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아니, 그래선 안될 것만 같았다. 함께 있던 스텝들을 바라보며 난
말했다.
"좋아요. 35밀리로 합시다!"
촬영장인 여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난 계획보다 일이 커져 버린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35밀리 필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살리는 일뿐이었다.
'그러려면 눈이 꼭 내렸어야 하는데....' 나는 몇 번이고 시나리오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눈이 내린 샛강의 풍경과 삭막한 맨땅 그대로인 풍경은 영상적인 효과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단순히 멋진 풍경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 없이 큰 아버지와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보영이의 마음을 사건이 아닌 영상과 소리, 음악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미지와 어우리는 배경 설정이 필수적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창밖 풍경은 메마른 겨울 농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촬영지에 거의 다 이르러서도 눈이 쌓인 곳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바심만 더해 갔다. 얼마 후, 멀리서 샛강이 보일 때쯤 누군가 소리쳤다.
"와∼저기 봐요!"
그 소리에 다들 일제히 창문에 바짝 붙어 환호성을 질렀다. 내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샛강 주위에만 소복히 쌓여
있는 하얀 눈! 그 하연 눈밭이 저 멀리 야트막한 산등성이까지 죽 뻗어 있었다. 누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소담한 마을과 샛강을
오가며 우린 촬영으로 여념이 없었다.
"자. 소녀, 좀더 자연스럽게 넘어져야 해!"
"홍규는 시선을 이 쪽으로!"
그러자 얼른 수화통역사가 손을 움직였다. 홍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고정된 화면 안에서 소녀는 몸을 빙글 돌리다가 넘어지고, 멀찌감치 앉은 소년에게로 화면이 옮겨 간다.
"컷! 좋아요." 만족스러웠다. 스텝들도 호흡이 잘 맞았고,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아역배우들도 그만하면 기대 이상이었다. 대학시절, 단편영화를 하나 찍으면서 스탭들 한사람 한사람과 부딪혀야 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진행이 너무 순조로워 오히려 괜히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괜한 걱정을 다 하다니.'
막바지로 접어든 촬영 사흘 째, 아침 일찍 두터운 잠바에 목도리를 칭칭감고 민박집을 나서는데, 차가운
것이 얼굴에 닿았다. 눈이었다.
"서둘러야 겠어요. 눈이와요."
촬영기기를 챙기던 스텝들에게 이르고는 먼저 나섰다. 아직 찍지 못한 장면들은 눈 내리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눈이 오면 장면이 앞뒤가 맞지 않아 곤란했다. 그렇게 반갑던 눈이 지금은 짜증스럽게 느껴지다니.
샛강에 도착해 서둘러
짐을 풀고는 한 장면이라도 찍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시야를 가리며 펑펑 쏟아졌다.
"컷!"
중단하는 소리에 스탭들이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쩌죠? 이런 상태로는 무리겠어요."
스탭들의 이야기를
듣고 뿌연 잿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음은 급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죠. 우선 점심을 먹으면서 좀 기다려
봅시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여럿이 방 안에 둘러 앉았다. 옆에서 건네 주는 따뜻한 국물 그릇을 받아 들고는 꽁꽁 언 손가락을 녹였다.
앞으로 남은 빠듯한 일정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눈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 순간, 따뜻한 국물에서 김이 피어 올라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 내리는 장면을 살려보면 어떨까?'
얼마 후, 다시 샛강에 진을 쳤다. 눈발이 날리는 사방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카메라를 고정시켜 오랜 시간 장면을 찍는 롱테이크로 풍경을 감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나서 난 힘있게 외쳤다.
"스탠 바이 큐!"
그렇게 나흘간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음향과 편집의 후반작업을 마쳤다. 음악은 중학교 때
친구가 맡아 주었다. 음악을 아주 좋아했던 그 친구에게 난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이담에 영화 감독이 되면, 네가 영화 음악을 만들어 줘."
마침내 마스터 필름을 손에 들었을 때 난 깨달았다. 우리들의
약속이 이제 이루어졌다는 걸. 더불어 우리들의 소중한 꿈도 이루어졌음을.
우체국을 뒤로 하고 걷던 걸음을 멈췄다. <스케이트>의 잔상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었다. 내겐 그 때 느꼈던 영화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아니, 내 인생을 걸어도 후회없을 만큼 더 강한 확신이!
우체국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더 이상 신문을 뒤적이지 않았다. 대신 내 인싱에 대한 답을 얻고자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 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어떤 삶이든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에 대한 주님의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누가봐도 확실한 답으로
말입니다.'
3일 후였다. 팩스로 전송된 종이들을 집어들고는 무심코 넘기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 중에 끼어 있던 서신 한 장을 빼 든 손이
덜덜덜 떨렸다. 발신인은 바로 '칸느'였다. 거기에 써 있는 글자 몇 개가 눈물에 가려 흐려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칸느에 가게
되다니!
지난 5월 나는 <스케이트>의 영화 감독으로 정식 초청을 받아 프랑스 칸느로 갔다. 그것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칸느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영예를 안고서.
사실 35밀리 필름으로 찍지 않았더라면 칸느엔 출품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미지와 어울리는 설경.
그리고 롱테이크를 쓴 눈 내리는 정적인 화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평가들은 이렇게 호평했다. 내 인생의 진로에 대한 물음에 이보다 더
분명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엔 일이 꼬이는 것만 같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든 일들은 이 순간을 위해 예비된 것이었다.
한 기자가
내게 묻는다. "조감독,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까?" 그가 나를 부른 호칭에 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난 내 인생과 영화에 있어서
늘 조감독일 것이다. 감독은 영원히 그 분의 자리일 테니까.
올 겨울엔 샛강에 나가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