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재일 동포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영화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동포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느끼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재일동포 분들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에서는 8.15가 다가오면 재일동포에 대한 특집이 다루어지곤 하는데, 그 즈음 우연히 어떤 신문에서 ‘총련 VS 조총련’이란 제목의 그리 길지 않은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한국에서는 ‘조총련’이라고 하면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어둡고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조총련’이란 호칭은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그 대신 ‘총련’이라고 불려지는 그 단체는 동포들의 인권과 생활을 위해 크게 힘써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눈길을 끈 대목은, 총련 동포들이 온갖 불편과 차별을 감수해가며 버텨 올 수 있었던 근간에 일본 정부의 탄압과 재정의 어려움 등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넘도록 꿋꿋이 지켜온 민족교육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텔레비전에서 민족학급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보게 되어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그리고 일본에서의 민족교육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0년 12월, 이 해가 가기 전에 일본에 가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판단을 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오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동안 몇 개월 가량 외국어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아이디어 스케치, 자료조사 등을 했지만 과연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제작비도 국내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2배 이상 들 것이 자명하다는 점 등이 우선 난점으로 예상되었으나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참으로 지난하고 복잡한 재일동포 분들의 역사와 현실을 영화에 올곧게 담아낼 수 있을지 염려 되었습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민족학급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제작팀으로부터 민족학급 선생님과 민족학급에 대해 논문을 쓴 한국 유학생을 소개 받아서 일본에서 머무른 2주일 동안 여러 학교를 방문하며 민족학급 수업 현장을 참관하였습니다. 학기말이었기 때문에 수업다운 수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었지만 민족학급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학생들의 발표회를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고 어떤 학교에서는 우리 민족 음식인 떡국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여름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만나서인지 언어의 장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고 한국과 일본에 떨어져 살고 있어도 우리들은 한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민족학급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한 민족학급 선생님으로부터 ‘일본에서의 민족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조선학교에 가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조선시장 근처에 있는 ‘제4 조선초급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종업식이어서 수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선생님이 성적표를 나누어 주시며 방학 동안의 주의사항 등을 말씀해주시고 계셨는데 교장 선생님이 유치반부터 고학년까지 한 반씩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그 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지금도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대목은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할 수 있는 조선 사람으로 키우려면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라고 확신에 차 말씀해주셨던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과 학교를 한 바퀴 둘러 보고는 교원실로 내려왔는데 학급에서 끝모임을 마친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께로 뛰어와서는 자신의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시고 ‘최우등! 잘 했구만!’, ‘우등!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한 명, 한 명 칭찬해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의 성적표를 힐끔 엿보았는데 성적이 조금 부진한 학생들도 전혀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교장 선생님께 자신의 성적표를 보여드리며 웃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 반에 약 70 명, 한 학년에 15 반, 전교 학생 수 3,000 명이 평균인 콩나물 시루 같은 한국의 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그야말로 그 모습이 ‘컬쳐 쇼크 ?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는 교장 선생님과는 물론 담임 선생님과도 인격적이며 정감 있는 개인적 관계를 가졌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반에 학생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름으로 불려질 때보다는 번호로 불려질 때가 더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조선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수록 제가 조선학교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날 보았던 광경이 결코 특이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이 조선학교 교원을 하는 물리적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더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며 가르치시고 있다는 것을 거듭거듭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영화를 공부했는데, 학교에 다닐 때부터 연출을 전공했고 그 동안 극영화 작업만을 해 왔기 때문에 자연히 처음에는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주인공을 조선학교 교원으로 설정하고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던 중 작년 11월 부산국제영화제의 PPP라고 불려지는 프리마켓(Pre-Market)의 신인감독 부분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를 포함한 8명의 신인감독들은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서 각자 10분씩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그 시간에 제가 그 동안 조선학교에서 촬영했던 것을 편집하여 보여 주었습니다. 한 감독에게 할당된 시간이 모두 해서 10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비디오를 2분 30초 정도로 짧게 편집하여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영화 관계자들은 조선학교에서 우리 말로 진행하는 국어 수업 등을 보며 관심 어린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친해지게 된, 고급부까지 조선학교를 나온 친구도 있었는데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모교의 모습이 당당하게 비디오로 나오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PPP 마지막 날 시상식에서 ‘부산영상위원회’ 상을 수상하고 상당한 액수의 상금을 받는 등의 좋은 일도 있었지만, 영화제 후 저는 오히려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제 때 보여주었던 비디오는 제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자료조사의 목적으로 최대한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 조심하며 촬영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잘 찍혔다고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미 그 학교의 아이들과 많이 친해진 상태에서 작은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담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영화를 찍을 때는 육중한 영화용 카메라와 조명기구, 많은 스탭들이 있게 될 텐데 그러면 과연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을지, 조선학교를 있는 그대로 영화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큐멘터리라는 쟝르가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갈등할 때 제가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영화사의 사장님이 제가 단지 주인공의 직업의 설정으로서 조선학교를 리서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깊게 애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조선학교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시고는 아예 조선학교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선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아주 잘 만들어서 그 영화를 한국에서 극장에 올리는 날 영화에 나온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초청해 함께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날 전야제 때 조선학교 학생들의 예술발표회의 마당도 마련해 이 아이들이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며 민족문화를 지켜가고 있는지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이 한국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본에 사는 북한학교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란 것을!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 전역에 있는 조선학교를 순회 하며 영화를 상영하는 것입니다. 조선학교를 졸업하신 어른들과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학교에서 헌신하고 계신 선생님들과 영화를 함께 보며 한국과 조선학교를 잇는 작은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극장에까지 걸 수 있을 만큼의 영화적 가치가 있고 조선학교를 나오신 분들이 보시더라고 공감하실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방송국에서 취재하듯이 1,2 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촬영해서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삶을 나누고 서로 깊이 알아가며 심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취재와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부탁 드리니 긍정적으로 검토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