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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대서양 맞은 편 썸머 영화 견학기(1989.10)
뉴욕은 매우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세로로 놓여진 길을 에비뉴라 하고 가로로 놓인 길을 스트리트라 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놓여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자기 개성이 뚜렷해서 느낌뿐만 아니라 건물, 상점,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도 확연히 구분이 된다.
수퍼마케트, 델리 상점들이 가득 차 있고 인도인들이 경영하는 뉴스스텐드, 흑인들의 노점상으로 복잡한 애비뉴에서 골목만 돌아서 스트리트에 들어가면,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 드문드문 보이는 조용한 아파트가 있는 동네로 들어서기도 한다. 가로세로로 질서 있게 번호 매겨져 있어서 길을 찾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일방통행이 많아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약간 혼돈이 되기도 하겠지만, 서울보다 훨씬 느긋해 보이는 출퇴근 시간에도 경음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맨하탄이 워낙 좁은 관계로 (가로는 3-4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지상교통이 늘 막혀 있는 상태라, 정작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예 자동차를 구비하지 않은 채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완전히 길 찾는 데 익숙해져 자신감이 붙을 때쯤 되어 그리니치빌리지에 가면 당황해버리기 일쑤이다. 갑자기 번호가 사라지면서 영어로 된 길 표지판이 사방팔방 매우 자유스럽게 놓여 있다. 마치 그리니치빌리지의 사람들이 매우 자유스러운 영혼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워싱턴스퀘어와 가까운 이곳은 우리나라 대학로처럼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도 많고 구멍 난 청바지, 염색한 머리, 공원의 벤치 위에서 자는 사람들로 '제멋대로'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짐 자무쉬, 스파이크 리를 탄생시킨 NYU 가 있는 곳이고, 뉴욕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요람이며, 극장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니치의 극장가에서는 전 미국에 개봉된 <리썰웨폰 2>,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배트맨>, <인디아나 존스 3>, 마이클 J폭스와 숀 팬이 함께 출연한 <전쟁의 사상자들>, 영국 영화인 <올바로 고쳐라>(Getting it right), 납량영화<영혼의 살육제>(Carnivals of soul) 등이 극장가에 선보이고 있었다.
극장이 많이 몰려 있는 곳으로는 66번의 링컨센터 주변을 꼽을 수가 있다. 이곳의 성격은 그리니치빌리지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좀더 아카데믹하고 고상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영화제에 어울릴 듯한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가 있었고, 영어자막이 들어간 불어영화들도 상영되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높은 문맹률과 외국문화에 대한 무지 등으로 자막이 들어간 영화는 잘 안보는 편이다.)
링컨센터에 속해 있는 엘리스툴리홀에서는 누벨바그 20주년 기념 'French Currents now & then' 이라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누벨바그란 영화평론가들이 미장센느(mise-en-seine)라는 영화이론을 들고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 du cinema)라는 진보적인 영화잡지의 지원을 얻어, 60년대에 일으켰던 영화운동이다. 쟝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루이 말, 에릭 로메르, 아니에스 바르다, 장 폴 벨몽도 등이 누벨바그를 이끌고 간 인물들이라는 것은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스쳐서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행사는 뉴욕 주와 프랑스 문화성, 현대 미술박물관의 필름부의 후원으로 열려졌는데, 8월 11일부터 27일까지 45편의 대표작이 보여졌다.
나는 마지막 날인 27일 일요일 앨리스툴리홀에 갔는데, 행사가 시대순으로 진행되었던 까닭에 그날에는 누벨바그의 영향을 받은 80년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86년 작 <녹색광선>이 27일의 첫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파리지안 여비서가 약혼자와의 이별 후 혼자 바캉스를 가면서 겪는 이야기이다.(프랑스 사람들의 35일 정도나 되는 긴 바캉스는 여가를 잘 즐기는 유럽사람들 중에서도 유명해서 7,8월에는 파리시민의 70퍼센트 정도가 여행을 떠나고 파리에는 일본인 관광객과 주인을 잃은 개들만이 있다고 한다.) <녹색광선>은 에릭 로메르의 '희극과 격언' 시리즈의 근작이다. 불어 특유의 해학 있는 대사가 여주인공과 함께 떠난 남불의 하얀 모래사장과 더불어 근사한 영화였다.
두 번째로 보여진 <집도 없이 법도 없이>(sans toi ni loi : vagabond)는 영화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낸 수작이었다. 1985년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세자르상(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을 석권하였는데, 상드린느 보네르의 치열한 연기는 섬뜩할 정도. 특이한 점은 감독의 연출방법이었다. 아니에스 바르다는 여류 거장으로, 이 영화를 찍으며 콘티를 한 장도 완성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당일 날 로케이션 장소에 도착해서 연기자 내부로부터 즉흥적인 연기를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적도 많았다.
여주인공은 극단적인 자유를 갈망해 엄동설한의 날씨에 무전여행을 한다. 밭두렁에서 동사한 모나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비춰지는 가운데 시작되는 영화는 죽기 전 그녀가 세상에 남긴 존재의 흔적을 더듬어 나간다. 마치 카메라가 모나를 회상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한다. 마땅한 줄거리도 갖추어지지 않았으면서 이토록 진지한 느낌이 드는 필름은 흔하지 않다.
<안녕, 아이들>은 역시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품으로 한국에서도 곧 개봉할 작품이다. 루이 말 감독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데, 본지 8월호에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 루이 말은 프랑스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그의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끈질기게 물어온 '배신'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국영화라면 기승전결을 살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을 울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을 법하건만, 프랑스 영화답게 이성을 잃지 않은 채 잔잔하게 긴장감을 지속시키는 연출이 돋보였다.
조숙한 악동 줄리앙을 연기한 마네스와 슬픈 눈을 가진 유태인 소년으로 나온 프또의 연기는 문자 그대로 극중인물이 되어버린 완벽한 것이었다. 그들이 성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옆에 미국인 아주머니가 앉아 계셔서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시냐고 여쭈어 보니까 자기는 외국영화는 다 좋아한다면서, 미국영화는 쓰레기 같다고 하시는 것이었다.(그런데 우리나라의 관객들은 그 미국영화만 골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감동을 받은 미국영화가 있었으니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데드 포에트 소사이티>. 이번 여행 중에 본 10여 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기도 한 영화이다.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해리슨 포드와 켈리 맥길리스가 출연한 <위트니스>, <모스키토 코스트>등으로 전세계 영화 팬들에게 꼼꼼한 연출실력을 이미 인정받은 바 있는 호주 출신 피터 웨어이다. 1950년 경 미국의 엄격한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피터 웨어 작품답게 음악, 미술, 배경, 캐스팅, 시나리오, 카메라 연출 등이 완벽하며 심각한 주제가 진실하게 그러나 결코 무겁지 않게 조화되어 있다.
수업 첫 시간, 엄격한 사립학교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서 선생님을 기다린다. 시를 가르치는 존 키팀 선생님은 휘파람을 불며 앞문으로 들어와 유유히 뒷문으로 나간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시작된 영어시간은 야외수업, 축구로 배우는 시 등으로 소년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클럽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로빈 윌리엄즈는 멋있는 연기를 보이고 있고 소년들도 최고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체이며 출연장면도 더 많은 것은 닐과 토트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 감각이 있으며 순수하고 착한 아들 닐을 로버트 션 레오나드는 영혼이 있는 존재로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무대에 오를 때에 함께 긴장하게 하고 그의 죽음에 한없는 허탈과 비통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가 토드의 침대 위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어. 드디어 알아 내고야 말았다구. 나는 연기를 하고 싶어.'라고 어린애처럼 볼이 발그레해져 껑충껑충 뛰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공부만을 요구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억눌렸던 예술적 감성이 키팀 선생님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인해 눈을 뜬 것이었다.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고 싶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가 될까봐,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는 말만 할까 한다.(실은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동생에게 얘기해 주었다가 남들은 다 웃고 있을 때 자기는 스크린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고 매우 많은 구박을 받았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놓친다면 내 마음이 아플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갈등의 양상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1989년 대한민국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 힐 교실의 두 교사라든가 가르치는 교과과목이 국어(English)라는 점, 하버드 의대만을 강요하는 부모님들로 인해 자살하게 되는 것까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뉴욕에서는 올해 깐느 그랑프리 수상작인 <섹스, 거짓말, 비디오>(sex, lies, and videotape)도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제 대상작 답게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꽉꽉 들어찼고 (극장에 사람이 듬성듬성 앉아 있는 미국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현상) 재치 있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는 등 작품성에 못지 않게 예상 이상의 흥행을 일으키고 있었다.
젊은 감독의 작품답게 대사는 매우 간결하면서 재치 있었고, 촬영이나 편집은 신선하다 못해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비춰진 한 줄기 진실의 빛, 구제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들이 자아를 회복하고, 존재를 확인하고, 기만이 벗겨지고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다고만 생각한 제목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하니 어쩌면 그렇게 잘 지었나 싶다.
50, 60년대를 풍미했던 누벨바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1989년 여름, 현재진행형의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더불어 90년대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전진해 나가야 하는가의 질문에 답을 얻어낼 수 있는 곳, 뉴욕은 실로 다양한 형태의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필름을 접할 수 있어서, 어떤 영화학도는 굶주렸던 영화 감상욕을 마구 채우다 보니 정작 학교 공부가 부실해지더라고 고백을 했다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할리우드를 미국 영화의 메카라고 생각하지만 뉴욕에는 캘리포니아의 늘어짐과 퇴폐성과는 다른 문화가 태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유럽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곳, 92년 유럽시장이 통합되면 그 여파가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영화계에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띠고 있을지. 내일의 짐 자무쉬, 스파이크 리를 상상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까.
1989. 10
고등학교시절 월간 <로드쇼> 뉴욕특파원으로 쓴 초기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