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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이 살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사서 집에 두셨다. 영어로 씌어진, 책장 몇 칸을 차지하는 분량의 세트였다. 그 때 어떻게 하다가 그 페이지를 접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떤 나라의 이름과 국기의 내용이 검정색 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혹시 반대쪽으로부터 보면 보일까 해서 책을 들고 밝은 곳을 향해 그 페이지를 비추어가며 읽어보려 애썼지만, 이미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친절하게 반대쪽 페이지에도 검정색 테이프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내용을 절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 때는 영어를 읽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북한에 관한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 정확히 알 수도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되었다. 그 나라의 공식적인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하물며 그곳에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용감하게 그 땅을 밟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난 이들은 그 대가를 치렀어야만 했다. (더 자세히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것은 ‘일본에 사는 북한국적 사람들’이라고 잘못 이해되어왔던 (총련계) 조선적 재일 동포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북한은 일본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재일동포가 북한국적을 가지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 식민지시대에는 다 일본 국민이었던 재일동포들이 해방이 되면서 출신지를 표시하는 의미로서 조선이라는 국적을 일본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 받았었다. 1965년 대한민국이 일본과 국교를 맺으며 재일 동포들은 한국을 국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매년 1만 명 정도가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있다. 조선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조선 반도에 있는 나라 중 하나만을 선택함으로 다른 하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통일된 하나의 조국의 국적을 가지는 날까지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조선적을 지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조선국적을 가지고 있는 동포들은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자들인 것이다.) 그 동안 총련 사람과의 혈연 혹은 친분 관계로 말미암아 어처구니없이 극심한 시달림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적지 않았었고, 70년대와 80년대에는 200여명의 재일동포가 유학 또는 일 관계로 한국에 왔다가 간첩이라는 혐의로 옥살이를 강요 받기도 했다.

 

재작년 6월 이후로 많이 달라졌다고 말들 한다. 실제로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남과 북의 지도자가 만나고, 이산가족들이 상봉하고 총련고향방문단도 4차례에 걸쳐 다녀갔다. 북한의 곡예단, 총련의 금강산가극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하고 제한적이기는 해도 남쪽의 방송국이 이북에 가서 취재한 내용이 방영이 되기도 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남과 북이 “결혼”하기까지는 깨뜨려져야 하는 불신과 편견, 두려움의 벽들이 아직도 견고하게 남아있다. 올해 초, 한 지방대학에서 총련계 학교인 조선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입학시키려고 했지만, 정부에서 그들이 한국에 와 사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안이 무산되고 말았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잠깐 만날 수는 있어도 함께 살기에는 아직…이라고 높은 분들은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

 

지리적 통일에 앞서 공통적인 언어, 문화, 역사의 민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 만이 아니라 해외동포를 모두 아우른 한민족공동체가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지배의 잔재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껴안으며 일본에서의 차별과 조국의 버림에 상처 받은 재일 조선인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들의 그들 됨으로써 가능한 일들에 대한 비전과 꿈을 품게 된다면, 그들은 일본과 조국을 잇는 그리고 남과 북을 잇는 평화의 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