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여름 II
어제 J대표님으로부터 가족이야기를 좀 들었다. 83년 온 가족이 7000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이민가셨는데, 그 이유가 아버님의 사촌동생이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버님은 사촌동생이 북한으로 간지도 모르셨었다고 하는데, 그 일로 인해 빙고호텔에도 가시고 많이 시달리시고 재산도 몇 천억 (지금 돈으로) 빼앗기고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대표님은 UCLA 졸업하시고 북경으로 공부하러 가셨을 때 북한에서 온 사람들과 많이 교제하셨었고 91년 북한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는 미국시민권자) 혹시 문제가 될까봐 두려워 가지 않으셨었다고 한다. 그 두려움, 그 공포... 한 번 그 두려움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공포. 이것이 영화에서 희연이 다시 상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두려움, 공포인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K씨의 담임 교수님이 총련사람과의 관련 때문에 시달리시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국 미국으로 떠나시고,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인데도 총련사람으로부터 받은 극히 개인적인 편지를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조각조각 찢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공포감. 두려움. 주저함.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분단의 현실.
사실 너무 거창한 이야기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피부에 느껴지지 않는. 분단, 통일... 하루하루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단어들인지도 모른다. 재일동포에 대해서도. 우리는 한반도를 벗어나 사는 우리 동포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우리는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한 재일조선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에 대해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되고, 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그와 함꼐 웃고 그리고 울 수 있게 된다면...
"To fully experience the tragedy of Titanic, to be able to comprehend it in human terms, it seemed necessary to create an emotional lighting rod for the audience by giving them two main characters they care about and then taking those characters into hell. Jack and Rose were born out of this need, and the story of TITANIC became their story. I realized then my film must be, first and always, a love story.
And what could be more romantic, in the dark and heart-wrenching sense of the word, than Titanic, with its stories of men and women torn from each other en masse by a cruel twist of fate, of widows scanning the faces of the few male survivors for their husbands and lovers, of the terrible loss and grief of the morning after... of so many hearts broken. The story of Titanic and her fate seemed a magnificent canvas on which to paint a love story, a canvas offering the full spectral range of human emotion. The greatest loves can only be measured against the greatest adversities, and the greatest of sacrifices thus defined."
(from <James Cameron's TITANIC>)
처음에 이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여태까지 보여졌던 북한사람의 전형적인 인물들과는 다른 캐릭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다. <인샬라>의 최민수의 캐릭터, <쉬리>의 최민식, 김윤진의 캐릭터는 북한=테러리스트라는 고정관념처럼 fighter, killer의 이미지였다. <JSA>의 송강호의 캐릭터는 조금 인간적이고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설정 때문에 역시 군인일 수밖에 없었다. 위의 세 영화는 정도는 다르기는 했어도, 결국 사랑이, 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말이었고,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지석씨가 송강호씨가 오사까에 왔을 때 <JSA>의 결말이 좀 더 희망적이어야한다고, 주인공이 죽어서는 안 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지금의 결말이 더 현실적이고 따라서 더 공감을 자아낸다고 느낀다.) 어쨋든, 내 영화에서는 좀 다른 북한사람을 그려보고 싶었다. 물론 일본에 사는 재일조선인이고 국적은 북한이 아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르고 그 나라의 해외공민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그들. 더 이상 총을 든 군인 혹은 간첩이 (생각해보니까 <간첩 리철진>이란 영화도 있었다) 아니라 생활인인 선생님, 부드럽고 친근감 가는 이미지. 그래서 유지태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Fred Markert의 영적전쟁 세미나를 들으면서 그런 피상적인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각 people group을 향한 하나님의 꿈.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calling은?
"강하고 담대하라 너의 주 곧 오시리
그가 오사 보수하시리 오랜 흑암의 멍에 꺾어주시리
너를 구원하시며 너의 눈물
씻어주시리
너를 구원하시며 주의 영광 나타내시리
여호와의 구속함 받은 백성 돌아오며 기뻐 노래하리라
슬픔과 탄식 다 사라지고 영영한 기쁨 넘치리
강하고 담대하라 너의 주 곧
오시리 그가 오사 보수하시리
강한 용사 여호와 강한 여호와 강한 용사 여호와"
(이사야 35:1~4, 10, by 고형원,
<부흥 2000>)
그 때 처음으로 이 노래가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노래한 찬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민족을, 특히 북녂의 형제들을 강한 용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calling을 원수가 왜곡시키고 그들을 묶고 있다는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다시 말하면 이 영화를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그분의 마음, 그분의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나는대로 써보았는데 두서가 없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자신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것은 너무나도 큰데, 내가 그런 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그런 생각에 마음을 빼앗긴다. 내가 만든 것은 정말 작은 단편 3개뿐. 그것도 마지막으로 만든 때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그 때에도 선배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 씬을 제대로 샷으로 나누지도 못했을 나의 실력... 프로듀서가 결정을 못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프로듀서라도 commitment를 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아직 가시적으로 나와있는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제가 어떻게 이런 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전 못합니다. 시나리오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흑흑흑...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1장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시편 115편 말씀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