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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여름 I

 

예수님께 저의 믿음을 보이기 위해서 글을 쓰겠습니다. 예수님께 저의 사랑을 보이기 위해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오늘 <부흥> CD를 들으며 기도하는데 이런 고백이 내 입술에서 나왔다.

 

어제 J대표님을 만났다. 도쿄에 출장오셨다가 가족을 만나러 나고야에 가는 길에 오사까에 잠시 들러주셨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셨지만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얼마나 버벅거리고 (속으로는 긴장했는지) 대표님과 헤어지고 나니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어젯밤 그리고 오늘 하나님꼐서 기도 중에 친밀하게 만나주셨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것을 먼저 걱정했었기 때문에 조금씩 쓰면서도 영 자신이 없었고 진도도 나가지 않았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고 예수님께 보이기 위해 쓸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세요.

 

오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여태까지 말씀해주셨던 것들을 생각나게 해주셨다.

 

내가 그들의 오랜 슬픔을 알고 있다. 이제 내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고, 그들의 슬픔이 바뀌어 기쁨의 춤을 추게 하겠다.

 

도쿄에서 막 돌아왔을 때 너무나도 외롭다는 감정이 들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킨테츠 백화점 사거리 지하철 입구에 한글로 써져있는 안내를 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쓴 것이 없어도 당장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그 주에는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많이 통곡했다. '하나님, 너무 힘이 들고 지칩니다.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문장을 다 만들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월요일부터 매일매일 그렇게 울며 기도했는데 금요일에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50년동안 아무도 우리에게 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알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 와서 왜 그렇게 힘이 들고, 마음이 무거운지.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늘 슬픔으로 젖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가셔지지 않는지, 왜 계속해서 나의 나됨이 싫게 느껴지고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드는지... 내가 중보자로서 재일조선인들의 슬픔과 아픔을 품게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일본인지? 남북이 하나되는 이야기를 왜 일본에서 하려 하는지? 그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하려면 왜 재일조선인인지? 왜 남한사람과 북조선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한의 여자와 재일조선인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2월 일본을 위한 단기중보기도학교에 참석했을 때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데 있어서 그 씨앗을 제공한 것이 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가 신사참배를 하고 그럼으로 인해 교회 안에 분열이 시작된 즈음에 만주에서 김일성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일본에서 온 선교사님이 말씀해주셨었다. 그 후에 여러 계기를 통해 참으로 신사참배의 문제로 교회에 아직까지도 분열의 골이 깊이 파여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영적으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일본이 우리나라가 분단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에는 우리나라를 분단시킨 일본의 땅에서 둘이 하나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일본으로 인도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4월 중보기도세미나에서는 Paul Hawkins가 남북이 하나가 되려면 먼저 숙제를 해야하는데 그것은 일본과 화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아, 하나님이 나를 일본으로 인도하신 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재일조선인들을 향한 마음을 부워주셨다. 화평케하는 자에 대한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면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9절) 일본에서도, 조국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들. 남한에서도 공화국에서도 그들을 품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거부하고, 이용하고, 아프게 하였다. 지난 반세기동안 그들이 받은 깊은 상처. 이제 그들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시어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게 하시고 일본과 조국을 잇고, 남과 북을 잇는 화평의 도구가 되게 하실 하나님의 꿈...

 

너무나도 거창한 이야기이지만, (내 자신을 보면 자신이 없어진다...) but, nothing is too big for Him! Our God is big God!

 

통일은 단순히 남과 북의 지역적인 연합뿐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벗어나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동포들을 품는 더 큰 의미의 통일이 되어야한다. (Worship Explosion homepage에 이것을 참 eloquently 써 놓았던데...)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은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오히려 분단의 현실을 생활에서 더 첨예하게 경험하며 거기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식민지시대부터로의 문제까지 안고 살아왔다. 그런 그들을 우리는 무관심으로 대해왔다. '재일동포들은 몇 십년만 지나면 다 일본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어떤 한국의 높은 분이 말씀하셨었다는데,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것은 사실 우리이다. 반면 공화국은 해방 직후부터 막대한 돈을 보내어 민족학교를 짓도록 도움을 주었다. 해방 후 민족을 찾으려 했던 많은 재일동포들은 총련에 소속될 수밖에 없었고, 한국은 그들이 북한을 지지하는 총련에 관련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 올 수 없도록 했고 (재일동포들의 대부분은 이남 출신이다) 본국의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그들을 이용해먹기도 했다. "1971년의 '재일교포학생학원침투단간첩단사건'은 일본에서 '서형제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재일교포가 본국에서 '간첩'사건에 연루된 첫 번째 사건이며, 이후 1970년대와 80년대에 200여 명의 재일교포가 유학 또는 일 관계로 한국에 왔다가 옥살이를 강요받았다. 옮긴이(김경자)가 일본에서 만난 어떤 이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날 안기부로 끌려가 '간첩'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입던 싸구려 중국제 점퍼가 그 증거물로 채택되었다고 하니, 웃어넘기기엔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p278, <서승의 옥중 19년>, 역사비평사, 1999) 본국에 사는 사람들도 총련쪽 사람과의, 많은 경우, 그리 밀접하지 않은 관계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조총련'이라고 하면 '간첩' 또는 '안기부' 뭐 이런 단어가 제일 먼저 연상되는 왠지 음습하고 위험한 인상...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그들...? 알면 다쳐!

 

"만약 우리 역사에 식민지시대가 없었다면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조국을 알기 위해 그렇게 애쓰고 19년간 독방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민족이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이 성립되지 않았을 터이고, '간첩'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에 이은 분단시대의 현실은 엄연하게, 때론 너무나 가혹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p279, <서승의 옥중 19년>, 역사비평사, 1999)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면서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고, 가슴이 멍든 것 같고, 숨이 편안하게 쉬어지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겁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