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
2001.07.08
사실, 어제 ***에 가서 조금 실망을 했다. 우연히(?) R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토요일 문화제에도 가게 되고 해서 월요일부터는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교원들과 협의해 보겠으니까 월요일 점심 때쯤 전화달라는 말을 듣고.... 슬펐다. 어제 밤 영화를 보니(<Snow Falling on Cedar trees>), 'wife 와 상의해 보겠다.' 라는 말이 거절하는 excuse 던데...
어쨌든, 이번 사건, 상황으로 인해 얻은 유익(?)은 조선학교에 좋은 선생님들만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그전에 %%에서는 나의 억압적인 학교선생님들에 대한 기억과는 달리, '선생님들 따뜻하고 헌신적이시고 교육에 열의가 넘치시는 선생님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나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딱딱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직"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되었다.
어제 SR씨의 말처럼... 아무리 과거에 한국 방송국의 프로그램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혹시 큰 방송국이라면 경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은령씨는 한 개인인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라는 것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 편견 뒤의 두려움. 어제 본 영화에서 미국이 일본과 전쟁 중에 어떤 남자가 여주인공 (Japanese)에게 심하게 말을 하며 모욕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는 사실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한 작은 소녀일 뿐인데...
비슷한 얘기를 어제 SR씨로부터 들었다. 집이 **이라서 Tokyo 조고까지 다니는데 전차로 2시간 정도 걸렸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신문에 기사가 나던 즈음 전차에서 어떤 일본인 남자가 SR씨의 다리를 차며 욕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동기라는 것에 대해...
- 일본에서 영화'하나'취재를 위해 머무르고 있을 때 note 중에서 -
2001.07.19
어제는 기도가 참 잘 안 풀렸었는데. 오늘은 좀 breakthrough 가 있었다. 일본을 위해 중보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있지 않는 일본을 대신해 중보자로서 회개하도록 인도하셨다. 오늘 주신 말씀도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내일은 야스쿠니 신사와 천황궁에 가려고 한다.
오후에는 J씨를 만났다. 내가 조선학교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 가능성이 0.1% 일거라고 말했다. 1%도 아니고.... 나가기전 기도를 해서인지 걱정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 몰라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 (제게는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가 총련동포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고향도 방문 못하도록 막아놓고 어떻게 보면 내가 학교 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가 여태 그들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간첩으로 몰린 재일동포가 몇 명이라더라.
그 신뢰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 일본에서 영화 '하나' 취재를 위해 조선학교에서 취재허락이 나올 때까지 머물러 있을때 note -
2001.07.24
조선학교에서 촬영하고 싶지만, 만일 상부조직에서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靑>의 case처럼 일본학교를 setting 해 찍을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말하자 YSG 선생님이 '나는 반대입니다.'라고 말했다. 학교 건물 하나하나에도 우리학교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 어머니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Absolutely!
SI군이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
아버지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시고(SI이 6살 때 쯤)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할아버지가 17세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병원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봤다. 충격이었다. 내가 할아버지와 사는 17년 동안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제주도가 보고 싶다!' 할아버지는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면 언제라도 고향에 가 보실 수 있었겠지만 평생동안 총련조직에서 일해 오신 그 기개를 저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RY선생님.
계속해서 일본어를 쓰는 학생에게 간단한 것은 우리말로 하고 어려운 것은 함께 배워가자. 집에서 우리말 써요? 쓰지 않지요. 우리 학교에서만 우리 말을 배울 수 있는데 학교에서 만이라도 우리말을 써야 하지 않소. (이제 통일이 되면)너희들이 우리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무기가 될 것이다. 조선학교 학생의 긍지.
SI선생님
어떤 재미교포가 오사까에 와서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그 이유는 어색한 우리말을 하는 재일동포 3세 선생님이 4세 아이들에게 우리말, 우리글, 우리 넋을 가르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 상인은 정말로 재일동포같이 말해야 하는데 한국배우가 할 수 있을까?
- 오사까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