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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imony

 

나의 filmography(여태까지 만든 영화의 목록)에 첫 번째 영화로 올리는 영화의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The Poor>이다. NYU에 다닐 때 만들었던 학생영화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소설의 제목을 따와 그렇게 지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나이 많은 남자와 소녀라는 설정도 그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나의 첫 번째영화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첫 번째 단계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너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어 말씀하시면서 처음으로 가르쳐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져야한다는 것이었다. <The Poor>에서는 홈리스인 주인공과 소녀를 통하여 이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영화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고 완성도에서도 미진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영화였다.

 

마태복음 5장 3절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든 후 그 다음 구절인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위로. 세상에서는 뭔가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에게 등이라도 쳐주면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애통하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보고 슬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참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生>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스케이트>를 만들 때처럼 어떤 한가지 구체적인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일들이 기억이 난다. 내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미국 뉴저지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 때 한국의 학교와 가장 큰 차이점을 느낀 부분은 수업시간에 디베이트(토론)를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디베이트의 주제로 가장 많이 나왔던 것이 낙태였다. Pro-life(낙태를 반대하는 쪽)과 Pro-choice(낙태를 찬성하는 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양쪽 다 나름대로의 충분한 논리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낙태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논쟁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과외'라면 미국에서는 '낙태'인 것이 문화의 차이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미국에서는 과외가 이슈가 될 일이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 낙태에 대해 문제를 재기하는 것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나의 의식을 바꾸어놓게 된 사건이 있었다. 여름방학 때 한국에 나와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낙태참회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낙태반대연합에서 주관하는 모임이었는데 예수원의 대천덕신부님이 말씀을 전하셨고 예배 중에 낙태를 행한 죄를 회개하는 기도시간이 있었다. 예배 후 생후 10주 된 태아의 발뱃지(손가락 한 마디 길이 정도의)를 사서 한동안 옷에 달고 다니기도 했었다.

 

이 영화를 찍은 것은 1998년이었다. 95년인가 96년에 시나리오 초고를 써놓았었지만 영화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가장 큰 이유는 - 재미없을 것 같아서. '과연 누가 낙태에 관한 영화를 보고 싶어할까?'하는 생각에... 오랫동안 묻어놓았던 이 이야기가 다시 생각나게 된 계기는 'IMF형 낙태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면서였다. 'IMF형 자살'도 슬픈 이야기지만 'IMF형 낙태'는 어쩌면 더 슬프게 들렸다. 사진작가인 이정률씨의 책에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은,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최루탄을 던지는 전경들을 향하여 돌을 던질 손이라도 있지 않은가"라는 말로 장애인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태아들은 그야말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아무 방법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시나리오를 들추게 된 또 하나의 구체적인 계기는 <스케이트>가 개봉될 즈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단편영화사전제작지원 공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스케이트>와 함께 개봉되었던 <햇빛자르는 아이>를 만드신 김진한감독님이 강력하게 설득하시는 바람에 마감을 불과 사흘인가 남겨두고 이 이야기를 몇 년만에 들춰내게 되었다.

 

그 때 아무래도 리서치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낙반연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버스정류장을 잘못 내려서 한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낙태한 사람들을 정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이 영화에서 바랄 수 있는 맨 마지막의 것일 것이다. 진심으로. 나는 더 넓은 의미에서 '죄'를 생각하고 '죄'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인간의 양심으로 아무리 이유를 붙이고 핑계를 댈 수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 앞에서는 죄인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피치못함과 죄를 고백하면 이미 다 치루신 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compassion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며 걸으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매일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매일 예수님의 피를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하여 무디어지고 내 마음 속에 얼마나 자기의와 교만이 싹트고 있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나의 조금 더러운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살리셨다는 것이 나에게 새롭게, 벅차게 깨달아졌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이 주도권을 잡으셔서...

 

영화를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하다보니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낙태를 첫 번째나 두 번째로 많이 하는 국가라고 한다. 물론 낙태라는 것이 정확한 통계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태어난 아이들의 성비를 보면 둘째, 셋째로 갈수록 남자의 비율이 급격히 느는데 이것은 도저히 자연스러운 것일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반을 구성하는데 있어 여자, 남자의 숫자를 맞추다보면 남자들은 항상 남아돌아 "홀아비"반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년에 따라 홀아비반이 1반이 아니라 2반, 3반인 경우도 있었다. <生>을 촬영하던 1998년은 범띠해라서 특히 여아낙태가 여느 해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여자가 호랑이띠면 팔자가 세다고 해서...

 

그 즈음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사건이 있었다. 언론은 분노, 경악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고 사람들은 충격과 부끄러움으로 휩싸였었다. 그 다음 날 신문에서는 손가락이 잘린 소년을 돕기 위하여 온정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고 경남도지사와 마산시장도 그 소년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신문의 여러 지면에 등장하였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거리의 하나였다. 나는 그 손가락이 잘려진 아이에 대하여 들으며 태어날 수 없었던 아이들을 생각했다. 잘려진 손가락을 보며 팔과 다리와 머리가 갈기갈기 찢긴 태아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들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이 잘린 이 사건을 놓고는 이렇게 난리를 떨면서 매일매일 목숨을 잃고 있는 작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감각이 없고 반응조차 없는 듯... 태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우는" 것이 너무 쉽게 합리화되는 것같다. 현실적으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로... "현실적"이라는 말이 참으로 왜곡되게 쓰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심장이 뛰고있는 살아있는 생명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언어속에, 생각속에 현실적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낙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죄에 대해서, 회개해야만 하고 용서받아야만 하는 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우리들은 죄를 짓고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이 영화에서 혜정이 낙태를 하게 되는 것도 그녀는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도무지 달리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죄는 죄이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그토록 명확하게 말씀해주시는 이유는 형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이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잊어버린다고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는 회개함으로 용서받아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죄짐을 메고 죄의 값을 치루며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께서 이미 피를 흘리시고 참 용서와 위로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맨 마지막 장면에 혜정과 지민이 식사를 하는데 텔레비전에서 유괴되었다가 시체로 부모에게로 돌아온 아이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설정이었다. 돈을 얻기 위해 아이를 죽인 유괴범과 돈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죽인 어머니를 병치해 보여줌으로 자신의 죄조차 깨달을 수 없는 무딘 상태를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우리의 결정에서 얼마나 돈이 주인일 때가 많은지, 생명의 주인인 그분을 젖혀놓고서... 하지만 그 씬을 찍는 날 무슨 이유로인가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그 씬을 어떻게 찍어야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 속 회로가 까맣게 다 타버린 것 같았고... 그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스탭들을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고도 결국 그 날 그 씬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참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성령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영화에 보면 혜정이 방에서 혼자 아파누워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몸만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씬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고 혜정역을 맡은 이은숙씨와 리허설을 하면서 추가한 것이었다. 이 씬이 추가됨으로 엔딩이 바뀌어야함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긍휼을 베푸시기 원하시는지... 평생에 이 영화를 촬영할 때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하여 넘치도록 계시하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후 참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졌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셔서 시작한 일이었고 그 과정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경험했었는데 왜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일까. 이 영화를 마치고 바로 <인터뷰>에 합류하게 되었었는데 그 영화가 끝날 때까지 1년동안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 아무 것도.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 잔금을 받고 돌아온 날 독일에서 팩스가 와있었다. 드레스덴 영화제에서 온 초청장이었다. 그 때 정말로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놀랐었고 감동했었다. 드레스덴 영화제에서는 단편부문 2등상을 수상했는데, 그 외에는 별 성과가 없었다. 1회 전주영화제를 비롯한 몇몇 영화제에 초대받은 것밖에... 아직까지도 내게 공급의 창구가 되는 <스케이트>와는 달리. 정말 애써 만든 영화가 푸대접받는 것 같아서 속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최근에도...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평생에 그 어떤 경험보다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예수님의 피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한 가장 큰 상이며 자랑인 것 같다.

 

2001년 2월 27일 ECHO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