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감독님, 제가 잘 울 수 있을까요?"
단편영화, <생(生)>의 클라이막스를 찍고 있을 때였다. 낙태 수술을 한 다음 날 오후, 혜정이 방안에 누워 배겟잇을 적시며 우는 장면을 찍으려는데 배우도 감독도 영 자신이 서질 않는 것이었다. 우린 돌아가던 카메라를 내려 놓고, 조명을 껐다.
'혜정의 눈물은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애통의 눈물입니다. 너무나도 손쉽게 낙태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저 여배우를 통해 주님의 애통하는 눈물을 보게 하소서.'
고달픈 촬영 나흘째. 난 그 여배우를 품에 안은 채 성령께 의지하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컷! 좋았어. 좋았어요. 애쓰셨어요." 모든 스탭들의 눈시울이 조용히 젖어들던 순간이었다.
촬영의 막바지. 문제는 이 영화의 마지막 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처럼 감독이 결론짓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 좋겠다는 생각에 혜정은 그냥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만화를 보고 TV에서는 유괴사건이 보도되고 있는 일상으로 마지막 신을 찍으려 했던 것인데 생각처럼 장면이 나와 주질 않는 것이다.
그 누구의 제안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고. 머릿속이 다 타버린 것 같이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스텝들은 지쳐서 고개를 숙였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
"오늘은... 그만 합시다...."
'나 때문에 내일 스케쥴이 엉망이 되었구나... 할 일이 아직 많은데... 그나저나 마지막 신을
어떻게 찍는담....'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령아. 넌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살인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려던 게 아니었잖아. 이 영화를 통해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니!'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가 난 내 영화의 감독이신 주님의 소리를 들었고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느꼈다.
다음날,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카메라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위로와 은헤. 그리고 씻음의 의미가 보는 이들에게 잘 전해지기를 기도하면서.... 드디어 마지막 신을 찍은 그 자리에서 간단히 예배를 드렸다. 연약한 나를 기적으로 도우시는 그 분께 올리는 감사 찬양이었다.
"감독님. 빨리가요! 주말이라 길도 막히고 비까지 온다고 했는데, 다시 찍어야 될 장면 많잖아요!"
어제 나 때문에 밀렸던 일들을 기쁘게 재촉하는 저 사람들. 독산동으로, 현상소로, 대치동으로 옮겨 다니려면 또 얼마나 힘이 들까. 마음과는 달리 막노동에 지친 이 몸은 벌써 경련을 일으키는데 무거운 장비를 어깨에 짊어지고 힘들게 나르는 고마운 동지들...
그나저나 교통체증이 심해 어떡하나 걱정하며 큰 도로로 들어서려는 순간. 꼭 막혀 있어야 할 토요일 오후 남부순환도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뻥 뚫려 있었고. 신나게 달리는 우리를 향해 눈부신 햇살은 박수를 치듯 비춰 주고 있었다.
낮은울타리 199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