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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어느날

 

조선학교에서의 우리 말

 

처음에 조선학교에 왔을 때 너무나 신기했던 말. 그 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사를 쓸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한 때는 수첩에 앞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학생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적기도 했다. '미안합니다네.' '고맙습니다네' '우에에서 기다려 놓겠습니다', 'OO 동무모 앉으세요.' '글짓기 먼저 하고 알밤 해주세요네.' '우시로로 나오시오.' '또 한 번 하자요네' 처음에는 해독할 수 없는 암호처럼 느껴졌던 신기하기만 했던 재일조선인식 우리말. 내가 일본말을 배워갈수록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말과 일본말이 비슷하기 때문에 머리 속으로 일본말을 생각하며 단어 하나 하나를 우리 말로 바꾸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 예를 들어 일본말로 'kiku'는 '듣다'라는 뜻과 '물어보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초급부 5학년이었는데, 내가 무엇을 가져도 좋으냐고 물어보니까 (아마도 소년단 뱃지 같은 것이라고 기억되는데) 학생이 '선생님에게 들어 보아 좋으면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책을 통해 말을 배우기 때문에 준말을 잘 모르는 아이들. 복도에 책읽기를 가장 많이 한 동무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이... 반 동무들에게 '이것 보라'라고 말하던 아이. 졸업을 앞두고 앨범 만들기. 칠판에 '알밤'이라고 쓰여져 있고 아이들이 눈앞에서 앨범에 사진을 붙이고 있었는데 연관을 짓지 못했다. (외래어 표기법이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아이들하고 말하다가 한참 있다가야 알게 되었는데, 어떤 아이에게 '이거 좀 봐도 돼?'라고 물어보니까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이. (국어책 랑독을 가장 잘 하는 학생) 서너 번을 물어보았는데도 전혀 이해하지 못 한 표정. 옆에 있던 아이(그 반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아이)가 '그것을 보아도 좋으냐고 묻고 있다'라고 통역을 해 주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나도 '보아도 좋아?'라고 그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니까 웃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절도 있는 말씀과 나의 말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래도 저학년일수록. 편입해온지 3년 되는 원길에게 내 말이 너무 빠르지 않냐고, 이해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슬아슬하게 리해한다'라고 말해서 웃은 적도 있는데... 처음 제 4에 갔을 때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내 말을 흉내내는 남동무도 있었다.

 

절도 있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비해 내 말은 너무 부드러운 듯... 입학식 때 선생님들은 '열렬히 열렬히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내가 '축하한다', '축하해'라고 말하니까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축하한다' '축하해'라고 말하면서 키득키득 웃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한국에서는 '구어체'라든지 '문어체'라든지 한자어를 많이 쓰는 것에 비해 (공화국의 영향도 있겠지만)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쓰는 것이 정겹게 느껴진다. '구수한'이란 형용사가 꼭 따라붙는 '입말'. 화장실 앞에 '살뜰하게 꾸리자요'라고 붙어 있는 표지판. 학교 곳곳에 붙어 있는 '우리말 류행어' 등등... '곱게 되었다' J선생님. 초급부 3학년 방울 토마토 따던 날. 우리가 웃으니까 그럼 그럴 때 뭐라고 말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우리라면 그저 '다 됐다'라고 말했을텐데 선생님이 그 말이 참 곱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