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12
2002.12.06 - '신춘마당' notes
value system에서 집단생활을 강조.
개인리기주의를 배격.
점수, 등수가 가장 중요한 한국 학교와는 굉장히 다른 점.
개인의 석차보다는 반이 잘 하는 것이 중요한...
'무지각 무결석 운동'이랄지 운동회 우승이랄지... 모범소년단
쟁취랄지...
공부가 쳐진다든지 몸이 약하다든지 좀 부족한 동무들을 오히려 더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
초급부 저학년이 축구를 하는데
좀 뚱뚱하고 안경 쓴 동무에게 어시스트를 해 주어 그 동무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 그 아이가 골을 넣으면 팀의 아이들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모습...
쯔보미 학교 특수학급과의 교류 (고3)
사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입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3당 4락이라는
말도 있다. (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사실 다양한 활동과 학교 행사가 워낙 많아 (방학도 없는 소조와 각종
대회...) 애들이 공부는 언제 하나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본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 따라가는 것이 힘들지나 않을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학생들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만큼 출중한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시험을 위한, 입시를 위한
공부. 정말 학문적인 실력과는 거리가 있다. 예전에는 그렇게 입시지옥을 지냈기 때문에 대학교 가면 공부를 하기보다는 놀고 술 마시는 데 바쁘게
된다. 요즈음에는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대학교 가서도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의 전공분야의
공부나 학문의 탐구보다는 영어 등 취직을 위한 준비. 또 다시 입시 공부. (경쟁을 위한) 그런 교육 (가치) 시스템의 폐해를 경험한 나로서는
'동무를 사랑하고 학교를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조선학교의 교육이 더 좋게 느껴졌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조선학교에 와서 제일 처음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관계. 그리고 학생들간의 관계. (편입생들에게 일본 학교와 우리 학교의 차이를 물어 보았을 때 제일 처음, 가장 많이 말한 것) 학생수가 적다는 면도 있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의 사명감, 헌신적인 태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민족교육을 아이들에게도 전하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교원이라는 것이 월급을 받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소명같은 느낌... 특히 교장 선생님들과 아이들과의 격의 없는 관계를 보고 정말 놀랐다. 한 학교에 2,300 명 정도 되는 한국 학교에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조선학교에 제일 처음 갔던 날, 제 4에서 종업식. 아이들이 성적표를 교장 선생님께 가지고 와서 보여주고 교장 선생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해 주는 모습. 동중에서 교장 선생님이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고 계신데 여동무가 교장 선생님의 귀를 만지고 가는 모습이랄지, 교장 선생님이 바람 나간 자전거의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주는 모습이랄지... 계속해서 목격됨. 북중에서 교장 선생님이 중 3 수학 수업에 들어가신다는데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시고. 매대에서 "교장의 특권을 남용하지 마시오"라고 교장 선생님에게 말하는 중 3 녀학생. 교장선생님께 스스럼없이 '교장 선생님, 글자가 더럽습니다.' '너무 빨리 진도가 나가서 리해할 수가 없습니다. 공책에 적다 보면 그 다음 것을 말하고 있고...' 라고 말하는 중 3 여학생들. 교장선생님이 '손님들 앞에서 교장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하다니'라고 하시니까 그제서야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아버지이십니다', '교장 선생님이 제일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들. 교장 선생님이 그 아이의 어머니도 가르쳤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에 대해 비판 사업을 벌린...)
홋카이도 교장 선생님에게도 들었는데 외부에서 초급부 학생들과 학부형을 만났는데 초급부 1학년 학생이 교장 선생님을 보고는 '난로 고치는 아저씨다!'라고 말했다는 에피소드. 가족적인 분위기의 학교. 특히 홋카이도에서는 가족, 친척들이 많고 (연결고리를 아직도 다 파악할 수 없는...)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교편을 잡고 있는 경우라든지 제자의 아들, 딸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수도 없이...
에피소드) 최고학년이 되면 저학년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체화되어있다. 초급부 6학년 (제4) 이 5학년 동생들에게 쓴 편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이제 최고 학년이 되니 저학년 동생들을 잘 돌보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의 예외 없이 아이들이 똑같이 적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 듯이) 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급식할 때 (1달에 한 번) 6학년 학생들은 1학년 학생들을 도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의 현실. 급식할 때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을 돕기로 했지만 어머니들이 '우리 아이가 그런 일을 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냐,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라고 항의해 어쩔 수 없이 선생님들이 그 일을 하는데 손길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에피소드) 하나 마뚜리 연습할 때. 여러 초급학교가 모여서 무용을 하는데 연습에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도시락으로 수퍼마켓에서 오니기리와 오챠, 새우깡(캇파에비)를 샀는데 연습을 보고 도시락을 먹는데... 미유가 오니기리 까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캇파에비 (쪼그만 50옌도 안 되는...)를 꺼냈더니 미유가 '이건 안 된다'고 손을 가슴에 X자로 갔다 대었다. 왜냐고 물어보니까 학교에서 과자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도시락이나 빵(밥 대용)으로는 괜찮지만 과자는 '개인리기주의'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이 아이들은 이미 졸업한 상태였다. 졸업했는데도 선생님의 말씀을 하늘처럼 우러러 받드는 아이들. '우리 옛말에 콩 하나라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다'고 말하니까 귀를 쫑긋히 세우며 그러냐고... 주장이 갓파에비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는데 아이들이 다 뒤 돌아 보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서 어쩔 줄 몰랐던 기억. 아무리 조그만 것이었어도 하나씩만 나누어 주었더니 많이 남았다. 하나씩 더 나누어주자라고 말했더니 미유가 다시 가슴에 팔을 X자로 갔다 대며 '절대로 안 된다, 선생님이 보시면 혼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우리 옛말에 한 번만 주면 정이 없다고 밥을 퍼 줄 때도 꼭 두 번 씩 퍼 주는 풍습이 있다'라고 말했더니 미유가 다시 귀를 쫑긋하고 듣고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더 나누어 주었다. (정말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에피소드...) 나중에 학교에 돌아와 교장 선생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교양이 아주 잘 되고 있구만. 아예 완장을 차고 사업을 하시오'라고 말씀하셔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2002.12.16
'민족'이라고 말할 때 참 조심스럽다. 단순히 (日本에서) 치마, 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니고 (학교 식당에서) 김치를 먹고 하는 것은 방송에서도 다룰 수 있는 깊이이고 나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더 본질적인 것, (개인적이고 특수하면서도) 좀 더 보편적인 것을 찾고 찾다가 시간도 하염없이 흐르고 무엇을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수렁에 빠져 (늪, 복잡한 그물)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다른 민족과의 대결구도로 '민족'을 말하고 '민족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가장된 열등감과 분노인지도 모른다. 진실한 의미의 자긍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vision 은 마지막 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각 민족에게 주어진 고유한 문화와 언어, 음악과 춤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문화의 회복, 정체성의 회복, 자존감의 회복. (생각이 너무 거대담론으로 뛰어가는 것을 지양해야 된다!)
작년 summer school에 갔을 때 아이들이 헉-헉-흐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본명선언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고백했던 것이 자꾸 기억난다. 아이들이 본명선언을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조선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기 바라며.. 였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납,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용납할 수 있을 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20대 때 女性인 나의 정체성을 embrace 할 수 없었기 때문에 struggle 했다. very much. 어렸을 때 반장을 하면서 왜 항상 '차렷, 경례' 는 남자 반장이 해야 하는지 (내가 남자 반장보다 공부도 더 잘 하고 선거 때 표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인정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도 하나님이 나를 여자로 되게 하신 것을 원망했던 것이 기억난다. (구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사건, 계기.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이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것이 좀더 힘들고 장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그것이 20대에 돼서는 더 심각해졌었다. 사랑(결혼)에 몇 번 실패하고 하지만.....(너무 이야기가 길어지고 늘어진다.)
Any way,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기,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께) 자기 자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사회,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조정하려고 하는 의도가 그 배후에 있다. K(일본여자와 결혼한)가 딸이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 걱정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더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다름에 대한 거부, 밀어냄, 차별은 단순히 在日동포를 향해서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되기'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이 주제가 과연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적절한 테마일까? 在日이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될까? 다루고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일까?
중학교까지 일본학교까지 다닌 한 아이가
조선학교에 와서 어떻게 변하게 될까? 과연 무슨 변화가 있게 될까? 장래희망이 바뀌게 될까? 희망하는 학교(진로)가 바뀌게 될까? 그 변화,
생각의 흐름을 담는데 1년이면 sufficient 할까? 정말 3년을 (졸업할 때까지)찍어야 할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아무 변화도 없다면? 도대체 얼만큼 더 폐를 끼치고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야 영화가 완성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