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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

 

 

2002.09.26

 

내가 처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중학생 때의 일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좋아해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연기, 촬영, 음악, 미술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잘 조화시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독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서강대로 잉그마르 베르히만 영화를 보러 다니고 고등학교 때는 (지금은 폐간된) 월간 로드쇼라는 잡지의 학생 모니터 기자를 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 가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결국 뉴욕대학교 영화과에 입학을 했다.

 

대학교 1년을 마치고 여름 방학에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두려워했던 마음이 컸던 내가 처음으로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왔음이 분명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믿어지며 나에게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거의 10년 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던 고민은 과연 내가 영화를 계속 해야 하는가 아니면 소위 풀타임사역자,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가의 갈등이었다. 실제로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신학교를 알아 보거나 단기선교를 가려고 지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전혀 그 쪽으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고 그런 시기에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영화 쪽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몇 번이나 반복이 되었다. 어렴풋하게 내가 영화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 ‘실크로드2000’이라는 사역에 동참하며 들었던 강의를 통해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영화와 선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선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계관’에 대한 강의 그리고 아직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지역을 다니시며 중보기도와 영적전쟁의 프론티어 미션을 하시는 선교사님의 강의와 간증을 듣고 어쩌면 영화를 하는 것과 선교의 일이 따로 따로가 아니고 둘 다 나의 부르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 실제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지만 그 깨달음을 가지고 바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는 긴 시간을 가져야만 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내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는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특별히 조선학교라 불리는 민족학교에 초점을 맞추어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마음에 두고 처음 일본으로 향했던 것이 2000년 12월이었는데 그 때 추위로 고생을 많이 했다. 우리 나라보다 기온이 높다고 옷을 얇게 가져갔던 까닭도 있었지만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가슴 한 가운데가 얼어서 감각이 무디어진 느낌… 울고 싶지만 울 수 조차 없는 답답한 심정…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늘 슬픔으로 젖어 있는 것 같고 나의 나 됨이 견딜 수 없이 싫은… 왜 그러한 느낌들이 떨쳐지지 않는 것인지, 예배를 드려도 오히려 더 무거워지는 듯 해 고통스러웠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의 오랜 슬픔을 알고 있다. 이제 내가 그들의 슬픔을 바꾸어 기쁨의 춤을 추게 하겠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일본으로, 조선적 (총련계) 재일동포들에게로 보내셨는지… 한 번은 일본에 있는 동안 일주일 내내 통곡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좀 장기간 일본에 머물렀기 때문에 한 달이 넘어가면서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닷새 째 되는 날 통곡하면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50년 동안 아무도 우리에게 와 주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총련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평생 처음 만나 봤어요’라는 말이었다. 복음을 평생 처음 들어보았다는 것도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평생 처음 만났다는 사람들… 한국 선교사가 만 여 명에 이르고 사역하고 있는 나라가 160 여 개 국가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 동안 냉전시대의 유산인 두려움과 적대감에 묶여 바로 옆에 위치한 나라,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들은 오지에 살고 있는 미전도 종족들보다도, 북녘 땅의 동포들보다도 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는데도…

 

하나님, 이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여쭤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부어 주셨다. 재일 조선인들은 남한에서 거절 당했고 (그들 중 대부분은 고향이 남쪽인데도) 북한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었고, 일본에서도 조국에서도 상처를 받아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 세대를 일으키실 것이며 구속된 그들은 일본과 조국을 잇고 남과 북을 잇는 평화의 다리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데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며 이 영화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 본다.

 

 

2002.09 - 1

 

그 누군가가 말했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의 흑인과 마찬가지라고....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아도) 일본 연예계에 재일동포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Sports.. 홍창수 선수의 예나, 조선학교가 인터하이(전국고등하교대항체육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면서 전국 권투 선수권 대회는 (몇 명 빼고는)다 조선학교 학생끼리 싸운다고....

 

 

2002.09 - 2

 

내가 이 영화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초상화가 아니라
공화국기가 아니라
독특한 재일동포식 우리말(로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고생하며, 차별받으며 사는 재일동포가 아니라
탄압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사람이니까 응당 민족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 말, 글을 알아야 한다는 "정답"이 아니라.

 

이 학교가
이 학교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학교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 학교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왜 이 학교를 대를 이어 지켜가려고 하는지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는지
얼만큼 그들이 학교를 아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