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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Best 10(1991.12)
뉴욕에서 91년 베스트 10을 선정하여 보냅니다. 구스 반 산트와 스파이크 리의 인디감독 진영은 올해에도 건재했고, 또한 알렉 캐시시안이 마돈나를 주인공으로 MTV와 도큐멘터리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지금 그 리스트를 공개합니다.
1.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구스 반 산트
화가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매우 인상적인 시각적 영상을 스크린 위에 표현하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단 3개의 작품만으로 ‘작가’의 위치에 올랐다. ‘짐 자무시, 스파이크 리와 어깨를 겨누는 미국독립영화의 기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작업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한마디로 그는 철저하게 제도권 밖에서 작업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가 사는 포틀랜드주 근방에서 촬영되었으며, 촬영진 규모는 믿을 수 없이 적다. 타이틀은 마치 학생영화를 연상시키며, 편집은 촬영 중 온 스텝과 캐스트가 동거동락하는 반 산트 감독 집 지하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서도 반 산트 감독은 완벽한 제도권 내의 배우(리버 피닉스, 맷 딜런)를 캐스팅해 매스컴의 시선을 모으는 지혜로움을 발휘할 줄 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최대강점은 ‘감정의 동질성’을 구현해내는 역량이 있다는 것. 그가 다루는 소재–마약상습, 동성연애–의 생소함을 생각해본다면 반 산트 감독이 실로 대단한 예술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2. 정글 열병 (Jungle Fever) 스파이크 리
스파이크 리의 비평의 칼날은 무디어진 것인가? <옳은 일을 해라>의 거친 목소리가 <정글 열병>에서는 매우 가라앉았다.
아니다. 스파이크 리는 초기작품의 공통적인 성향이었던 ‘비뚤어진 인종편견관’을 극복하고 성숙한 사고로 이르는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정글 열병에서는 리 감독이 여태까지 늘 다루어 온 주제–인종간의 마찰-을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의 관계를 통해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 흥미롭다.
마약 소굴의 롱샷은 진정 잊을 수 없는 극적인 장면이고, 스티비 원더의 음악은 영화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미장센의 모든 요소를 –배경, 연기, 조명, 음악, 카메라- 가장 완벽하게 배합해 놓는다. 그런 맥락에서 스파이크 리는 진정한 영화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3.코미트먼트 (The Commitments) 알란 파커
알란 파커 감독은 실로 여러가지를 시도하는 실험적인 예술가다. 그가 영화를 찍은 장소만 해도 할렘에서 미시시피강, 일본인 전쟁수용소까지 이제는 그의 국적이 모호할 정도이다.(실제로 그는 영국인이다)
알란 파커를 유럽으로 되돌려놓은 영화는 <코미트먼트>-‘사명’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 더블린(아일랜드)의 소울 밴드의 이야기이다.
그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룬 것이니 음악이 특별히 뛰어남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고 시각적으로도 음악 못지않게 관객을 현란하게 한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캐스팅된 ‘배우’들은 진짜 배우들보다도 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알란 파커는 제도권(자본)과 비제도권(미학)을 넘나들며 진짜 만들고 싶은 영화만을 만드는 능력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코미트먼트>는 그의 재능이 집결된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4. 미녀싸움꾼 (La Belle Noiseuse) 쟈크 리베트
쟈크 리베트는 마법사인가보다. 4시간의 영화라, 듣기만 해도 매우 공포스러웠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하니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마치 스크린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침묵마저 프랑스적이다’라는 쟈크 리베트 감독의 말처럼 <미녀싸움꾼>은 매우 독특한 영화이다. 임마뉴엘 베아르의 연기는 단연 최상급! 그녀의 옷깃이 바람에 날리는 것, 그녀가 아뜰리에에 들어서며 짓는 표정은 중요한 복선을 제공한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그녀가 왼손을 주먹쥐고 얼굴가로 올리며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모습인가요?”라고 화가에게 묻는 장면.
음악, 비록 서너번 밖에 나온 적이 없지만(4시간 상영시간 중에서) 매우 아름답고 적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셀 삐꼴리, 제인 버킨의 연기도 매우 무게감 있게 영화를 받쳐준다. <미녀싸움꾼>, 아름다운 마법의 믿을 수 없는 4시간!
5. 분노의 역류 (Backdraft) 론 하워드
앞으로 론 하워드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만든 영화만 친다면 의문의 여지 없이 <분노의 역류>는 하워드 감독의 필생의 역작이다.
타이틀이 나오기 전 처음 5분에 관객에게 이토록 강한 감동을 주는 영화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모든 연기자는 평소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어 감동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고, 한스 짐머만의 음악은 헐리우드의 클래식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분노의 역류>의 주인공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생명을 가진 ‘불!’ <터미네이터>의 차갑고 금속적인 심상에 정반대에 이미지로 맞선 착상이 놀랍다.
6. 땅 (The Field) 짐 세리단
짐 세리단, 거장 예감, 단 두 편의 영화밖에 찍지 않은 감독에게는 대단한 호칭인 듯 싶지만 그 두 영화가 <나의 왼발>과 <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땅>에서는 흙에 대한 애착이 광기로 바뀌고 부조리는 죽음을 낳는다.
800년 묵은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뼈 깊은 증오의 감정은 영국미망인 소유 땅의 경매 사건을 통해 첨예하게 드러나고, 종교에 대한 토론도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엄숙함은 실로 잊을 수 없는 장엄한 순간 –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아들을 따라 지팡이를 흔들며 파도 사이로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 그 뒤로 어머니가 성호를 긋고 주기도문을 외운다. 아들 둘과 남편을 모두 잃었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꿋꿋한 어머니, 생활력이 강한 전형적인 아일랜드 여성의 모습이다.
7.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크르지츠도프 키에슬로브스키
올해 뉴욕영화제의 막을 올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적인 요소로 가득 차있다. 이 영화를 논리나 심리학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은 아무래도 이렌느 야콥의 연기이다. 순수함과 절망이 복합된 그녀의 두 캐릭터는 실로 그녀에게 큰 도전이었고, 그녀는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이중생활을 성공적으로 스크린 위에 표출해냈으며, 깐느는 이를 ‘여주주연상!’이란 이름으로 치하했다.
8. 프로스페로의 독서실 (Prospero’s Books) 피터 그리너웨이
<프로스페로의 독서실>은 가장 뛰어난 영화는 아니더라도 10위권에는 올려놓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TV라는 뒷배경을 가지고 있고 ‘인공미’를 추구하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에게 HDTV의 등장은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데 그야말로 적절한 테크놀로지였다.
편집을 맡은 마리나 보드빌은 엑스트라 크레딧을 받아 마땅하다. 거의 매 컷 등장하는 수퍼임포지션(그림 위에 그림을 겹쳐보이는 것, 오버랩과는 다르다)은 그녀의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피터 그리너웨이는 이 시대의 가장 실험적인 영화작가로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영화 중간에 극장을 나가는 관객의 수도 다른 감독의 영화에 비교도 할 수 없게 많지만…
9. 진실 혹은 대담 (Truth or Dare) 알렉 케시시안
<진실 혹은 대담>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가를 확인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마돈나의 ‘1990 블론드 앰비션 투어’ 비디오를 보는 것이다. 분명 똑 같은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했음에도 알렉 케시시안은 분명 훨씬 뛰어난 요리사이다. 그의 교묘하게 조작하는 능력은 마돈나를 때로는 모성애를 가득 지니고 있는 성숙한 여인으로 때로는 심오한 예술가로 때로는 격의 없는 친구로 나타나게 한다.
10. 그린 카드 (Green Card) 피터 와이어
‘섹스와 폭력 없이도 관객이 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피터 와이어의 이런 미학관은 자못 진지하다. <위트니스>, <모스키토 코스트>, <죽은 시인의 사회> 등으로 끊임없이 인본주의의 문제를 제기한 감독은 이번에는 <그린 카드>로 본격 로맨스에 도전했다.
제랄 드 빠르디유와 앤디 맥도웰 커플의 ‘깊고 푸른 밤’은 유머와 애정이 가득 차있다. 블랙 코미디의 씁쓸한 뒷맛이 없는 고로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영화. <그린 카드>는 나서는 순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영화이다.
곤곤홍진 (Red Dust) 엄호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진주같이 아름다운 영화. 좀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매우 강하게 남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게 높은 수작.
임청하와 장만옥의 모습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신화적인 요소와 역사/정치적인 요소를 기가 막히게 배합시킨 엄호 감독의 연출 솜씨에 저절로 탄성이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