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01.jpg

 

 

 

top5_05.jpg

 

 

1991년 뉴욕 필름 페스티발(1991.11)

 

 

91년 뉴욕영화제는 전례 없는 축제였다. 기다리던 짐 자무쉬의 최신작 <지상의 밤>이 위노나 라이더, 베아트리체 달의 호화 캐스팅으로 야심만만하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진짜 스타는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었다. 처음으로 리버 피닉스와 키누 리브스가 연기를 보여주었고, 압도적인 영상은 영화광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신작 <프로스페로의 책들>은 NHK의 전면지원으로 이루어져 일본의 잠재적인 시장 공략도 새로운 관심이 되었다. 92년 세계 영화를 가늠하는 뉴욕영화제의 흥분과 열기를 현지에서 전했다.

취재 사진 / ECHO FILM (본지 NY 특파원)

 

 

뉴욕영화제는 깐느나 베니스 영화제와는 달리 비경쟁제도로서 전세계의 걸작 예술영화를 한 자리에 모아 뉴욕의 1년 아트시네마 프로그램의 상당수의 영화가 뉴욕영화제 때 소개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뉴욕 영화가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연간 행사이다. 뉴욕영화제에 소개되어 성공을 거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짐 세리단의 <나의 왼발>

 

영국배우인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출연하기는 했어도 엄연한 아일랜드 영화로서 링컨플라자 극장에서 6개월도 넘게 상영되고, 미국전역에 배급이 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헐리우드의 심장에서 톰 크루즈와 모간 프리먼을 물리치고 오스카를 손에 거머쥐기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올해도 뉴욕영화제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9월을 전후해 언론에 매우 빈번하게 소개되었는데,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은 구스 반 산트의 <내 마음의 교향 아이다호>였다. 물론 리버 피닉스와 키누 리브스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이 첫 번째 관심을 끄는 요소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약방의 카우보이>로 워낙 거대한 성공을 거둔지라 감독의 인터뷰 위주로 된 기사가 많았다. 빌리지 보이스는 구스 반 산트 인터뷰에 3장을 할애했고, 뉴욕타임즈는 일요일 특집 칼라판에 감독의 사진을 (리버 피닉스가 있는 영화의 스틸보다 6배 정도나 더 큰!) 실었다. 미국영화 포스터에서 배우 이름만큼이나 큰 글자로 Film by Gus Van Sant라 써진 것을 보면 그가 스파이크 리, 짐 자무쉬와 더불어 미국 3대 독립영화작가(auteur) 대열에 당당히 끼는 위치에 올라섰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올해 29회 뉴욕영화제의 전체적인 경향은 신비주의, 상징주의가 매우 강세였다. 동유럽의 정치적 혼란 상황, 이간의 DNA까지 조작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 인류는 어느 때보다 불안감에 쌓여있고 (소련의 쿠데타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미처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단계에 이른 듯 하다.

 

개막식 프로그램이었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상징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 가득 차 있는 영화이다. 폴랜드의 베로니카(Weronika)와 프랑스의 베로니끄(Veronique)는 지구의 두 장소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도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똑 같은 버릇-예를 들면, 금반지로 눈가를 문지르는-을 가지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신비하게도 똑같은 버릇을 가지고 있는 현상은 자코 반 도르마엘 감독의 <토토 영웅>에서도 나타난다. 어른이 된 토마스가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에벌린은 노란 드레스와 뒤로 가지런히 땋은 머리로 토마스의 어린 시절 사모의 대상이었던 누이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옷과 머리 모양은 역시 앨리스를 매우 좋아했던 알프레드가 부인인 에벌린에게 노란 드레스를 사주고 머리를 따고 다니라고 말한 것으로 이치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에벌린과 앨리스가 침대에서 토마스에게 어느 쪽 손이 더 예쁘냐고 물어보는 묘한 공통점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신비주의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은 종교. 데이빗 마멧 감독의 <살인(Homicide)>은 복잡하게 얽힌 범죄와 더불어 유태교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바비 골드(죠 만테냐)는 살인계 형사로 두 갈래의 소속감(경찰/유태인)을 두고 어느 쪽에 충실해야 할지 갈등한다. 바비는 수사 과정 중 유태인들을 많이 접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바비를 ‘히브리어도 못하면서 어떻게 유태인이라 할 수 있냐’라며 힐난한다. 영화에서 히브리어 대사가 꽤 많은데 자막 처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도 안되어있다. 관객들은 바비와 함께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라는 것. 소설가 마이클 톨킨의 감독 데뷔작 <환희(The Rature)>도 역시 종교를 중심소재로 취하고 있다. 전화국에서 일하는 쉐론(미미 로저스)는 근본주의 (Fundamentalism : 제1차 대전 후에 일어난 미국의 신교파의 일파로 성경의 창조설을 확신하고 진화설을 전적으로 배격하는 등 교리에 매우 충실한 기독교의 한 교파)로 개종한 후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다. 계시록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 네 마리의 말이 하늘을 날아가는 등 초현실주의적인 영상으로 가득 찬 이 영화로 마이클 톨킨은 신학 느와르 (theological film noir)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경향은 다국적 합작영화가 많다는 것이다. <토토 영웅>은 감독이 벨기에 출신이라 흔히 쉽게 벨기에 영화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벨기에/프랑스/독일 합작영화고 첸 카이거의 <현 위의 삶>도 프로그램에 제작은 엄연히 독일/영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책>은 네덜란드의 자본과 일본의 기술로 만들어진 다국적 작품이며 짐 자무시의 <지구의 밤>은 자그마치 전 세계의 5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촬영한 끝에 완성한 것이다. 국제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알란 베를리너 감독의 매우 개인적인 도큐멘터리 <가까운 타인(Intimate Stranger)>. 도큐멘터리의 중심 인물인 조세프 카수토는 베를리너 감독의 외활아버지로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자라고 일본인들과 동업을 하고 후에 미국으로 이민온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유태인. 평생에 보내고 받은 편지를 다 모아둔 할아버지같이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먹지를 사용하는 정성!) 베를리너 감독은 매우 꼼꼼하게 연출을 했다. 사진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서 1시간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내려니 한 사진이 평균 1초 미만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초스피드 영화.

 

<가까운 타인>이 재치와 향수가 가득한 매우 가족적이고 따뜻한 도큐멘터리라면, <혁명의 사진(pictures from a revolution)>은 지극히 무겁고 심각한 본격 정치 도큐멘터리. 사진기자 수잔 마이즐라(Susan Meisela)가 10년전 니카라구아 혁명 때 찍었던 사진들 속의 인물들을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추적한 것이 대강의 내용이다. 혁명 당시에는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인심이 더 삭막해지고 끼니마다 먹는 것을 걱정해아 하는 현실에 매우 슬프다고 말하는 여인, 한창 공부할 나이에 데모에 열중하느라고 기술자가 되지 못하고 평생 노동자로 전락해버린 인생을 가슴 아파하는 남자, 혁명 당시 민중의 반대편에 섰던 계엄군이었던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사진에 뚜렷이 얼굴이 나와 있는데도).

 

니카라구아의 정치적 상황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우리 나라에서 비슷한 무렵에 벌어진 사태를 니카라구아의 혁명군-계엄군에 대입시키자 좀 알 듯 싶었지만) 어느 쪽에 있었던지 니카라구아의 장래를 위한 행동을 했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장래가 오지 않았음에 마음 아파함이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한껏 무겁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현재에도 존재하는데 우리들은 얼마나 안이하게 살고 있단 말인가.

 

영화제중 가장 이색적인 선정작품은 월트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대 제작회사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그리고 아직 미완선단계라는 사실이 영화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고로 영화는 부분마다 컬러와 흑백이 번갈아 스크린을 메웠다. 사실 이 기회에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단계를 차례대로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관객들(그 중에는 몇 명의 어린이도 있었다)의 반응은 그야말로 놀라왔다. 웃고, 울고… (필자는 두 번–벨이 아버지와 헤어지는 장면과 야수와 죽으려는 장면에) <미녀와 야수>는 그 많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걸작 중에 유일하게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나의 아이다호>, <살인>, <라벨 누와쥬즈/미녀 싸움꾼>은 영화제 상영 다음 날 속속 개봉했고, <프로스페로의 책>, <미녀와 야수>등은 11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현 위의 삶>은 현재 배급회사가 없는 상태인데 영화가 기대보다는 약간 아니라는 반응이 팽배해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다.

 

어쨌든, 3주 동안(17일) 링컨센터에서 벌어진 29회 뉴욕영화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뉴욕영화제 심사위원장 리차드 페냐는 이제 내년의 행사를 위해 내년 7월경까지 700여 편의 영화를 보는 의식을 다시 시작할 것이고 뉴욕의 영화광은 또다시 영화에 파묻힌 채 가을을 시작할 것이다.

 

 

NIGHTS on EARTH / 짐 자무쉬

 

짐 자무쉬의 신작 <지상의 밤>의 시사회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관객이 모였다. 주연은 위노나 라이더, 지나 로울렌즈, 베아트리차 달 등 쟁쟁한 이름이 들어 있었다.
영화는 까만 바탕 위에 알록달록한 지구가 점차 커지면서 바이킹이 행진할 때 불렀음직한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벽에 걸린 LA, NY, 파리, 로마, 헬싱키의 시계를 보여주며 LA에서부터 영화가 전개된다. 각 에피소드의 시작에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LA에서 코리아 타운이 중점적으로 촬영된 것이 흥미로웠다.

 

LA; 코키(위노나 라이더)는 머리도 제대로 안 빗고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택시 운전사. 그녀와 대조적인 매우 부유한 비버리 힐즈의 중년부인이 코키에게 영화에 출연할 것을 제의하지만, 자신이 택시 운전사임에 대단한 자존심을 가진 그녀는 ‘영화배우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거절한다.

 

NY; 헬무트는 독일에서 이민와 영어가 서투르다. 요요는 브룩클린 출신으로 헬무트의 택시를 타는데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배경인데도 그 본질은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파리; 새벽 4시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영업하던 택시 운전사는 한밤중 파리 시내 한가운데서 눈이 먼 여인을 태운다. 그녀는 눈 뜬 사람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매우 세심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로마; 야간 운전을 하는 택시 운전사는 어느 날 밤 신부님을 태우고는 망설이던 끝에 형수와 간통한 것을 고해성사한다.

 

헬싱키; 아키는 직장을 잃고 집에서 마누라한테도 쫓겨나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불쌍한 친구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동정을 받는다. 그러나 아키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 그리고 영화 <지상의 밤>도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