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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1991.12)

 

 

터미네이터, 헐리우드 2001년의 시네아스트

 

제임스 카메론이 91년의 가장 훌륭한 감독은 아니다. 연출력만 갖고 승부한다면 <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콜세즈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각적인 미술도 <가위손>의 팀 버튼과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영화가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차라리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크르지츠토프 키에슬로프스키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그는 어떤 감독도 열기를 두려워 했던 영화의 판도라 상자를 용기 있게 열어젖혔다. 그리고 <터미네이터 2>는 미래에 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T2>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2001년의 영화가 바로 이 작품에 걸려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작업의 방법을 과감하게 폐지시키고, 우리 방식대로 해나갔습니다!” <T2>는 헐리우드가 이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건 화면에 펼쳐지는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스펙터클의 상상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근본적인 혁신 때문이다. 영화의 미래는 컴퓨터의 사활이 걸린 실험 전쟁터가 되었으며,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모조/허상(사이뮬레이션)은 전세계 첨단 전자제품의 화려한 박람회처럼 보인다. 제임스 카메론은 ‘진짜’터미네이터는 바로 마이크로 컴퓨터 칩이라고 설명한다. 그 칩 속에 숨겨져 있는 상상할 수 없는 디지털 그래픽의 무한한 조합과 항열에 의해 영화는 더욱 새로워 진 것이다.

 

“나는 <T2>가 성공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1억불짜리 실험영화라고 생각하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결점을 지적하기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T2>의 SFX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헐리우드의 전문가들도 쉽게 알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T2>는 거대한 셋트 속에서 만들어진 대작이 아니다. 오히려 컴퓨터 화면을 앞에 놓고, 차례로 설계하여 하나씩 조합해 낸 소프트웨어 전자산업의 총결산이다. 그래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이 영화 속의 프로그램 1024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처절한 액션 시컨스들은 68개로 나뉘어져 비디오 게임처럼 완성되었다. 그 마지막 완성까지 중간에서 단 하나라도 프로그램이 풀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SFX 전문가들은 이제 하늘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얼굴 마스크를 만드는 대신 브라운관 앞에 매달려 하루 18시간씩 강행군 해야만 했다.

 

헐리우드 영화는 이제 <T2>이후 전세계 영화사에 하나의 ‘심연’처럼 버틸 것이다. 우리는 토키의 탄생, 칼라 필름의 발명 이후 세 번째 혁명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 혁명은 전세계 영화제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컴퓨터 산업은 더욱 거대한 규모로 영화를 장악할 것이다. 영화라는 기계장치는 새로운 메커니즘과 접합되어 이제 SFX를 내세우지 않고 화면내부로 그 모습을 숨길 것이며, 겉으로 드러난 화면은 그대로 놔두고 90년대 영화산업을 근본적으로 재정비 할 것이다.

 

<T2>가 끝장내려 돌아온 것은 그저 91년의 박스 오피스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헐리우드의 영화를 노동집약 산업에서 자본집약 산업으로 전환시킨 것이며, 그 혁명은 이제 곧 우리에게도 심판의 날(!)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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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1954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멤피스에서 영화관으로 등교(!)하던 영화광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영화 서클을 만들어 8미리 영화를 찍었다. 대학에서 소설가를 지망했고, 80년 로저코만 산하의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82년 <플라임 킬러>로 데뷔했고, 그 후 2년의 준비 끝에 <터미네이터>를 찍었다. 이 영화로 재능을 인정받고 86년 <에이리언 2>를 찍었다. 이 영화는 전편의 애드리언 라인과 맞겨룰 걸작으로 손꼽힌다. 89년 <어비스/심연>으로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했으나 흥행에서 실패하였다. 그 후 <터미네이터 2>로 91년 다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