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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헐리우드 ‘비장’의 시나리오(1991.12)
92년을 맞으며 헐리우드는 새로운 모험담을 준비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의 고민을 담은 <여명>, 뉴욕 슬럼가를 배경으로 한 한 어머니의 고민을 담은 <광명의 도시>, 팀 버튼의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서스펜스물 <진실한 사랑>, 매력적인 악한으로 알 파치노나 리처드 기어가 거론되는 <피 흘리는 로미오>, 위기를 맞은 30대 여자의 로드무비 <서부로 향하여>, 아즈텍판 ‘늑대와 춤을’<꼬르떼>, 올리버 스톤의 무명시절 시나리오 <25세기>가 92년을 기다리고 있다.
페놀 사건 전격 영화화?
브라질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간호원은 어느 날 우연히 2차대전 당시 격추당한 비행기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 비행기에 은괴가 가득 차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해군측에서는 그 은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개발을 위해 2사람의 병사를 파견한다. 이 간호원은 은괴에 대한 교환 조건으로 밀림에 집과 병원을 지어줄 것을 요구하고 나오는 가운데, 해군에서 파견된 두 병사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첨예한 갈등이 벌어진다. 하지만 밀림의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벌목을 하는 제국주의적 기업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자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고 브라질 난민을 위한 공동주택을 밀림에 건설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 전개이다.
금기에 도전한다 - <여명>
<여명(Day break)>은 알란 보운의 연극 <베이루트>를 바탕으로 스테판 톨킨이 쓴 액션 로맨스 시나리오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의 미래,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이 불어난 에이즈 환자들은 마치 로마시대의 노예처럼 낙인이 찍힌 채 격리수용소에 갇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으로 처우 받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하반군을 조직한다. 이들의 임무는 격리 수용소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구해내 숨겨주거나 도망시키는 것.
제작비 천불 이하의 영화는 재미없다?
2차 대전 후 뉴욕의 슬럼가에 사는 소년, 태어나고 아는 세계란 그것이 전부이므로 정부에서 지어준 저소득자를 위한 공동주택에 사는 것도 소년에게는 행복이다.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이 어두침침한 슬럼가에서 벗어나 아들을 빛의 세계에서 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루이스 콜릭의 시나리오 <광명의 도시(Radiant City)>는 탄탄한 극적구성력과 가슴 시린 감동에도 불구하고 <토탈 리콜>, <딕 트레이시> 같은 헐리우드의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너무 규모가 작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애니메이션에 장가가던 날
<진실한 사랑(True Love)>. – 제목만 들었을 때 언뜻 떠오르는 생각 ‘하이틴들이 나오는 설익은 사랑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선입견은 감독이 팀 버튼(<가위손>, <배트맨>)이라는 소리를 들음에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팀 버튼 감독 특유의 초현실주의에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섞여 90년대에 새로운 영화장르를 개척하지 않을까 성급히 예감까지 하게 되는 <진실한 사랑>의 개괄은 의외로 제법 단순하다.
새로 이사 온 소녀를 두고 두 소년이 벌이는 팽팽한 대결. 삼각대결은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소재이고, 환상은 나이를 초월한 영원한 주제이다.
알 파치노, 리차드 기어가 허드슨 호크역을 맡는다면?
<피흘리는 로미오(Romeo Is Bleeding)>는 유유상종, 떨어져는 죽어도 못 산다는 두 사람 – 타락한 경찰관과 그를 유혹하는 악녀 – 을 주인공으로 한 힐래리 행킨의 시나리오다.
알 파치노와 리차드 기어가 남자 주인공 역 물망에 오른 배우들이라 하니 기대가 될만도 한데 제작진과 배우가 서로 시간이 안 맞고… 좌우간 뭔지 껄끄러운 뒷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것은 나쁜 놈(부패한 경찰)이 너무나도 남성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로 시나리오에 묘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멋있는 도적, 허드슨 호크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 91년, 트라이스타 제작부에서 생각을 한 번 더 해보시죠.
<위기의 여자> vs <델마와 루이스>
<서부로 향하여(Heading West)>는 도리스 베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앤 비더만이 쓴 시나리오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30대 <위기의 여자>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무겁고 심각한 영화는 아니고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모험이 깔려있는 내용이다. 그러면 오히려 <델마와 루이스>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까?
30대의 노처녀인 여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를 당한다. 그녀를 납치한 범인은 사람의 문제를 관통해 보는 희한한 재주가 있는 정신병자. 여자는 위험요소가 있긴 하지만 외로움 속에 다가온 그를 구원자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곧 그러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험과 로맨스, 발견과 성장, 웬만한 배우라면 이 모든 요소가 갖추어져 있는 역을 탐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미 헐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데브라 위거, 수잔 서랜던, 킴 베신저 등)이 이 역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내보인 바 있다. 상대역인 정신병자역도 만만치 않은 역.
헐리우드판 ‘비정성시’ <운명>
다니엘 바르톨리니의 시나리오 <운명(Man’s Fate)>의 원작소설은 안드레 말로의 동명작. 1920년대 타이완을 배경으로 중국의 군사령관과 국민당을 이끄는 장개석의 전투가 그 와중에 인질로 사로잡힌 외국인들과 맞물려져 이국적이고 정열적인 심상을 제시한다.
미국인 이상주의자, 그의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을 주는 러시안 공산당 친구, 중국인 의사, 프랑스 플레이보이, 타이완의 독한 여자, 이 대서사시는 중심인물만도 전세계적으로 다수이다. 그리고 불과 70년 전의 근대사를 다루는 것이기에 정치적으로 미묘한 점이 많아 (특히 요즘 해빙 무드에 젖어 들어…) 방대한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등 어려운 점이 많아 일찍이 67년 MGM에서 크랭크 인을 했다가 하루 만에 포기한 전과가 있다는 꼬리표가 붙은 영화이다.
바르톨리니가 쓴 시나리오는 86년작인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마지막 황제>로 중국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가 다시 한 번 중국에서 좀 더 세계적인 영화를 찍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일이 진척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막으로 날라가 버렸고 각본가는 “내 작품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이 시나리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처지이다.
마이클 J 폭스를 잡아라!
로버트 로다의 오리지날 스크립트인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The Christmas Conspiracy)>는 이미 85년도에 워너 브라더스의 제작 수뇌부가 영화화를 심각하게 고려해 본 바 있어 어느 영화보다 제작의 가능성이 높은 작품.
주인공인 촉망받는 젊은 변호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뉴잉글랜드에 사시는 할아버지를 방문한다.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신고로 집에 모인 가족들은 속으로는 자기가 받을 유산의 몫이 얼마일까 머리를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온 가족을 소집한 이유는 유산의 분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장가를 가신다는 거다. 그리고 결혼 상대자는 주인공의 옛 연인. 크리스마스 날 대저택에서 얽히고 설키는 코메디 드라마는 확실히 관객의 취향에 잘 들어맞을 듯하다. 그래서 마이클 J. 폭스가 그 영화에 주연을 할 결심을 하고 판권을 샀는데 스케쥴이 계속 밀리자 결국 파라마운트로 다시 넘기고 말았다.
현재 감독까지 내정되어 있는 상태(피터 예이치)인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은 주인공의 캐스팅에 성공이 달려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중론이다.
아즈텍판 <늑대와 춤을>
“영화는 모름지기 스펙타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16세기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 장군 헤르냔 꼬르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꼬르떼(Cortes)>의 제작자 니콜라스 카잔의 말이다.
16세기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 문화 –스페인과 아즈텍- 에 관한 영화는 볼거리가 대단하겠다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지만, 고증에 맞게 소품 의상을 갖추어 놓을 일을 생각하면 왜 이 대작이 영화화되지 못하고 지난 3년 동안 시나리오로 남아 있었나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제목 자체가 <꼬르떼>인 만큼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송두리째 짓밟은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영화가 간다고 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미국인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일 지는 미지수. 더욱이 <늑대와 춤을> 같은 미국의 역사도 아니고 남의 나라 역사인 바에야. 그래서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아예 제작자본도 외국에서 끌어들이려고 한다. 글쎄, 미국이 못 대는 자본이라면 남은 나라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작가의 상상력이 딸린다?
<25세기(Demolished Man)>은 올리버 스톤이 무명시절이던 80년도에 프로듀서 에드 프레스만과 함께 쓴 공상과학물이다. 원작은 알프레드 베스터의 클래식 사이언스 픽션. 25세기의 미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결함사회로 묘사되어 진다. 그 사회는 에스퍼라 불리는 고위층에 의해 운영되어 가고 있는데 에스퍼는 개인의 생각과 꿈까지도 다 감지할 수 있는 마치 <1984>의 비밀경찰과 같은 존재이다. 대사업가 벤 라이크는 얼굴이 없는 사람에게 쫓기는 악몽에 매일 밤 시달리다가 그 강박관념으로 사업의 경쟁자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른다. 이 사건은 에스퍼 여경찰의 손으로 넘어가고 라이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상상도 못했던 일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