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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Film Festival(1991.11)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 90년대에 첫번째 도착한 걸작

구스 반 산트는 아마도 지금 2001년의 영화를 가장 분명하게 약속할 수 있는 ‘진짜’ 뉴웨이브 시네아스트일 것이다. 그는 <밀라 노슈>로 단번에 비평가들의 주목을 모았고, <약국의 카우보이>에서 아웃사이드들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짐 자무쉬나 스파이크 리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구스 반 산트의 관심은 영화 속에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을 어떻게 담아내는가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금 영화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하나의 출구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노선은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에서 절정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 두 게이 청년의 사랑의 이별, 그리고 리버 피닉스와 커누 리브스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고향 아이다호를 떠나 포틀랜드의 사창가까지 밀려간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기억만을 갖고 있는 마이크는 선천성 수면증세로 시달린다. 그는 잠이 몰려오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만다.
포틀랜드에서 마이크는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며 매일을 연명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콧트(커누 리브스)를 만나 그들의 집단에 끼어든다. 그들은 황폐해져버린 텅 빈 아파트에서 기거하며 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그들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불리우는 밥이라는 사내가 포틀랜드로 돌아온다. 그들은 부랑자의 축제를 열고 자신들의 삶을 찬양한다.
마이크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고 스콧트에게 말한다. 스콧트는 우정으로 그와 함께 어머니를 찾으러 아이다호로 향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로마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된다.
두 사람은 로마까지 찾아 가지만 거기서 어머니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만 듣는다. 실의에 빠진 두 사람은 거기서 카르멜라라는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스콧트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좌절한 마이크는 혼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콧트는 돌오와 원래는 시의장이었던 아버지에게로 찾아가 부르주아의 삶을 선택한다. 이제 마이크와 스콧트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이크는 영화 첫 장면처럼 다시 고속도로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다. 이번에 그는 또 다시 어떤 우정과 배신을 만나게 될까?

 

- 새로운 세대를 짊어지는 두 명의 새로운 스타를 기억할 것

헐리우드 영화광을 자처하면서도 언뜻 좋아하는 ‘동세대’스타를 찾아내기가 힘들다면 여기 그 리스트가 등장한 셈이다.
리버 피닉스의 이름이 ‘River(강)’인 것은 그의 아버지가 히피 시절 지은 이름. 그런 피가 어울리게 리버 피닉스는 자유분방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로브 라이너의 <스탠 바이 미>와 스필버그의 <인디애나 존스 3 – 최후의 성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가 멋지다/는 생각은 거의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그 카리스마적인 우울함이 거의 온 몸에서 뿜어나오는 것 같다.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그와 ‘사랑’을 나누는 게이 청년 커누 리브스는 우리에게 엉터리 삼류 <빌과 테드의 어드벤쳐>로 알려져 실제로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데뷔작이 컬트영화의 걸작 <강의 저 끝>이며, 그는 또한 여류감독 캐틀린 비글로우의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패트릭 스웨이지와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그도 리버 피닉스처럼 여기서 최선을 다한 명연기를 보여준다.

 

 

Interview: 아웃사이더의 노래를 부르는 외로운 로드 무비

 

- Gus Van Sant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였다. 화가로서 인정받던 그는 80년대에 들어 16미리 독립영화 <헐리우드의 앨리스>와 <밀라 노쉬> 두 편을 완성시켰다. 이 두 편은 단번에 컬트영화의 대열에 올라섰다. 89년 첫번째 상업영화 <약국의 카우보이>로 90년대를 책임지는 시네아스트로 평가받았고, 프랑스 영화지 <까이에 뒤 시네마>로부터 2001년의 감독 20명에 추천되었다. 91년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로 리버 피닉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그의 평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 뉴욕은 들떠있다. <약국의 카우보이>의 ‘기대하는’ 신인 구스 반 산트가 <내 마음의 고향>으로 2년만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새로운 영화가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구스 반 산트는 진짜 걸작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민감하고 비밀에 찬 감독을 직접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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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 (이하  < 아이다호>)가 세익스피어 <헨리 4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이 영화의 촬영 직전에 고백했는데, 이제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정말 정말 그러합니까?

 

구스 반 산트: <아이다호>는 두 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입니다. 커누 리브스가 맡은 스콧트는 ‘거지의 왕자’라는 이야기에서 <헨리 4세>와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반면에 리버 피닉스가 맡은 마이크는 그야말로 진짜 거리의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는 매춘으로 먹고 살아가야 합니다. 스콧트에게서 거지는 낭만이지만 마이크에게 그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은 마이크입니다. 나의 이 신작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오손 웰즈의 <헨리 4세>를 본 적이 있습니까?

 

구스 반 산트: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존경하는 거장의 그 영화를 보고 처음 <헨리 4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와 커누 리브스를 지배하는 것은 붉은 색입니다. 리버 피닉스의 의상, 벽, 심지어 조명까지도 붊은 색입니다. 처음에는 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중궁식당에 대한 의문이 후반부에서 바로 그 색상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스 반 산트: 붉은  색은 마이크의 직업을 상징합니다. 거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불그스름한 빛깔은 연어를 상징합니다.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마이크가 부모(정체성)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은유적 설명이지요.

 

리버, 당신은 어떻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리버 피닉스: 처음에는 감독님이 스크립트를 보내주신 것이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그 다음에는 맷 딜런의 <약국의 카우보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출연을 결심하였습니다. 다만 커누 리브스가 공동출연 한다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습니다.

 

선천적 수면증(narcoleptic disease)이라는 매우 특이한 성격과 환경에서 자란 마이크라는 인물의 페르소나를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리버 피닉스: 반 산트 감독이 내게 최면병을 앓고 있는 친구 제이크를 소개해 주었지요. 그래서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도서관과 병원에 가서 공부한 것은 물론이구요. 더 힘든 것은 내 나이 또래의 남창(!) 매춘부입니다. 거리의 삶은 많은 관찰을 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에 관한 영화도 보았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유머를 나타내느냐라는 거였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매일 밤 내가 마이크라고 생각하고 숙제처럼 글짓기를 했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 거리의 거지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구스 반 산트: 남자 매춘부라는 직업, 방황하는 젊음이 그들을 평범함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영화 속에 그려진 포틀랜드 거리의 아웃사이더들은 LA 이전 뉴욕이건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약과 혼란, 그것이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입니다.
리버 피닉스: 저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낭만적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특히 거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낭만이란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자존심이지요.

 

거리의 삶이 어디서나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리버 피닉스와 커누 리브스는 로마까지 여행을 가는 것입니까?

 

구스 반 산트: 그럴 지도 모릅니다. 마이크가 로마의 분수대 앞에서 깨어났을 때 옆에서 서성거리는 남자 매춘부들의 모습은 미국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내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에게 ‘문화 충격’을 경험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여행을 많이 했고, 그래서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전혀 이질적인 문화를 접하는 순간의 충격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때는 네덜란드 북부 바닷가에 갔을 때였습니다. 내가 네덜란드의 피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이름에 Van이 들어가면 십중팔구 네덜란드 사람이다) 뿌리를 찾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면에서 무언 중에서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구스 반 산트: 글쎄요, 내가 영화감독인 동시에 화가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앤디 워홀보다 폴 모리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나의 초기 영화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한데, 나는 배우들과 일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방임주의를 채택합니다. 즉 배우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고, 배우 스스로 역할을 창조하는 자유를 주는거죠.

 

자막에 ‘브루스 베버에게 특별히 감사를’ (브루스 베버는 최근 ‘평화’라는 주제로 한 사진들을 모아 뉴욕에서 전람회를 가진 사진 작가이다)이라고 씌어 있는데, 그가 영화에서 한 일은 무엇입니까?

 

구스 반 산트: 다음달 ‘인터뷰’ 잡지에 실릴 사진을 브루스 베버가 특별히 찍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