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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부터의 편지 -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미국 비평가의 매도 속에 탄생된 저주받은 걸작 소설

 

64년 허버트 셀비가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세상에 발표했을 때 비평가들은 일제히 '더러운 책'(타임지)이라고 혹평을 가했다. 하지만 이 '저주받을' 현대의 묵시록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70만부가 팔려나가는 경이적인 이변을 낳기도 하였다.

 

그 동안 몇몇 사람들이 영화화를 시도해 보았지만(그 중에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도 있었다.) 할리우드의 그 누구도 미국의 치부를 참혹하게 드러낸 이 끔찍한 영화를 찍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이들이 있으니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만들어낸 울리 에델(감독)과 번트 아이싱거(프로듀서)이다. 이들은 미국인이 아니다. 아니 그러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은 독일인이다. 원래 소설 자체도 유럽인에 의해 쓰여졌으므로 사실 생소할 것은 없다. 셀비 자신은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이 매우 유럽적인 이야기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소위 '기회의 나라 미국'이라는 상투적인 비유가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배제된다.

 

칼라로 촬영했지만 침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흑백조로 잡은 화면의 모습은 지상 위에 존재하는 '지옥' 그 자체. 8월의 열기는 땅을 녹이며 사람을 미치게 하고 공장가에는 파업중인 노동자들이 위험한 눈초리로 배회한다. 전과자, 매춘부, 동성연애자가 우글거리는 곳-1952년의 브루클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영화에서 브루클린이란 장소가 현실에 입각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브루클린시의 모습은 실업문제, 정치부패, 인종분규로 말미암아 영화 못지 않게 혼미한 상태이다.

 

 

지옥, 브루클린, 상실과 혼란, 그리고 사람들...

 

해리 블랙(스테판 랑)은 노동조합 선전부장으로 파업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인데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으니 동성연애자란 사실이다. 그는 파티에서 만난 여장남자와 사랑에 빠지나 그가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그를 저버린다. 경찰과의 대결에서 보여 주었던 영웅적 행동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급기야 동네 불량배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마치 십자가에 달린 듯 벽에 걸려진다. 하늘을 보고 "오! 하나님"이라 울부짖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견된다.

 

한편 트랄라라(제니퍼 제이슨리)는 빨강색의 도발적인 옷을 입고 다니는 창녀인데 어느 날 남자를 꼬시려고 맨하튼에 나갔다가 군인과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 군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순수한 사람으로 트랄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떠난 뒤 그녀는 말로 표현 못할 상실감에 잠긴다. 사랑을 잃었기에 급기야 그녀는 바에서 겉옷을 벗으며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고 온 거리의 남자들이 그녀를 짓밟는다.

 

반쯤 실신한 트랄라라를 구해주는 사람은 또 하나의 순정파 소년 조르제트.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꿈인 그 소년은 모든 사람의 놀림에도 아랑곳 없이 늘 파일로트 모자를 쓰고 다닌다. 트랄라라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는 소년의 최대의 소망은 오토바이에 제일 처음으로 그녀를 태우는 것이다. 드디어 소년의 누나 결혼식 날 오토바이를 선물 받은 후 들뜬 마음으로 온 거리를 찾아 다니지만 트랄라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그녀를 찾아낸 곳은 공터. 옷이 다 찢기 우고 얼굴이 멍든 채로 마치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하늘색 스웨터를 덮어주고 소년은 울음을 참지 못한다. 그 때 트랄라라는 의식을 차리고 소년을 안아주며 울지 말라고 한다. 마치 매우 자상한 어머니같이.

 

사실 이 영화에서 누가 주인공인가 꼬집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 우화들의 모음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성경(특히 구약 성경)의 분위기는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다. 사악한 인간과 그로 말미암은 지옥의 모습, 그래도 신의 용서를 비는 죄의 영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파업 시 전경과 노동자들이 충돌하는 것인데 거대한 물의 힘으로 철문에 붙어있는 사람들은 수 미터 밖으로 날려보내는 것은 이른바 지옥의 아귀 같다.(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면 우리 나라에도 최근 시위 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눈총의 위력을 실감하시기 바란다.)

 

얼굴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배우들임에도 스테판 랑과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는 압권 그 자체이고 암울한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하지만 간간이 조지(소년)와 트랄라라가 만날 때의 사랑의 테마는 아름답다 못해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