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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부터의 편지 - 그리고 '악몽'보다 낯설은(1990.07)

 

 

피터 그린웨이의 충격적 컬트 무비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배트맨>으로 시작된 90년대 시네마는 네온사인의 암울한 악몽이다. 89년에 벌어진 세계적 사건-동유럽의 도미노 현상 등-과 92년의 EC 통합 등은 유럽의 영화작가로 하여금 세기 말의 위기를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 현상은 마치 2차 대전 직후 실존주의자의 출현과도 같다. 차이점은 2차 대전 후에는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동서방의 냉전으로 분열의 위기감이었다면 90년대는 유럽에서부터 불어 닥친 인식의 속도를 초월한 통합의 바람이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영국 뉴 시네마의 귀재 피터 그린웨이의 충격적인 신작이다. <도안가의 계약>, <건축가의 배>를 창작한 바 있는 그린웨이 감독은 제목만큼이나 길고 복잡한 이 영화에서 사회의 도덕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90년대의 실존주의자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막이 오르자마자 보여지는 곳은 르올랑데(Le Hallandais : '네덜란드의'라는 뜻) 레스토랑의 주차장. 전체적인 화면의 색조는 우울한 네온의 파란색. 흡사 명부의 연기같이 뿜어 나오는 드라이아이스와 하늘을 보고 짖어대는 야생 개들은 음울한 분위기에 일조를 한다.

 

도둑(마이클 캄빈)은 돈은 많지만 무지의 극치를 달리는 인물로 런던 최고의 레스토랑인 르올랑데로 매일 저녁 부인과 부하들을 거느리고 식사를 하러 온다. 헬렌 미렌이 분한 부인은 왜 이런 남자하고 결혼했을까? 우아한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교양 있는 여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면서 독서에 열중해 식사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의사(리차드 보린저)와 눈이 마주침으로써 운명적이고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은 채 순백의 화장실에서 정염을 불태운다. 책벌레에 가깝도록 책에 몰두하는 마이클은 일자무식인 남편에게 억눌려 있던 조지아나(부인)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의 도피성 여행이다. 조지아나에게 일종의 연민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요리사의 협조로 두 사람은 매일 저녁 주방의 한 구석에서 밀정을 나눈다. 단순히 부인이 화장실에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도둑은 일단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질투심으로 눈이 멀어 포크로 사람을 찌르는 등 온갖 잔인 무도한 비인간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마이클과 조지아나는 서고로 피신을 하지만 조지아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이클은 도둑 일당에 의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마지막 장면은 연극적 구성이 어느 장면보다 더욱 더 두드러지는 압권이다. 도둑 한 사람을 위하여 벌어진 연회는 그 동안 그에 의해 피해를 받은 모든 사람의 복수의 장이다. 검은 색으로 정장한 사람들의 분노에 찬 결의의 표정으로부터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대로 도둑은 조지아나의 총구로 심판의 순간을 맞이한다.

 

<요리사...>는 100퍼센트 스튜디오 촬영으로 5개의 공간만이 보여진다. 식당 내부(빨강색), 주방(초록색), 화장실(흰색), 주차장(파란색). 네온 조명에 의해 인위적으로 변하는 색깔은 인간성이 말살되어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현대인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한가지 예외적인 장소는 마이클과 조지아나가 순수한 사랑을 위하여 도피한 서고. 책이 둘러 쌓인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암시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 높게 뜬 달이 마이클이 죽었을 때 빛을 잃는 것도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다. 어쨌든 이런 뚜렷한 색깔의 구분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볼커 쉴렌도르프의 미래 경고 영화 <핸드메이드 이야기>에서도 빨강, 파랑, 회색 등으로 계층에 따라 옷 색깔을 달리하여 입지 않았던가.

 

 

우연한 사건의 일대 난투극 그리스틴 훼이버의 <베일 점퍼>

 

크리스틴 훼이버 감독의 첫 번째 작품, 베일 점퍼(Bail Jumper)>는 흡사 요한계시록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폭풍, 썰물, 일식, 메뚜기 떼의 습격, 유성 등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재난이 1시간 30여분에 걸쳐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사회 중심 세력에 의해 소외된 상태이다. 조는 실직을 당해 3일 동안 침대에서 나가지도 않은 채 누워서 천정에 붙어 있는 거미를 잡기 위해 총을 쏘아대 횟가루를 온통 얼굴에 뒤집어 쓴 인물이고 일레인(에즈터 발린저)는 로스엔젤레스서 온 일종의 좀도둑으로 감방을 들락거린다. 이 영화의 제목 자체(Bail Jumper)가 '보석 중에 달아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든 두 사람은 현실에 매우 만족하지 못한 상태이다. 둘 다 직장을 잃어 수입원도 없고 경찰이 매일 집 근처를 에워싸고 수색을 하던 중 폭풍이 불어와 온 마을을 날려 버리자(모든 집이 다 무너졌는데 가장 허름한 죠의 집만이 유일하게 그대로이다. 이 영화에는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진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죠와 일레인, 죠의 친구 세 명이 미국 중부에서부터 꿈의 장소 뉴욕까지 먼 여행의 길을 떠나는데 이후에도 숱한 우연이 꼬리를 잇는다. 우주 어디에선가 날라온 유성이 자동차 앞 유리를 깨고 정통으로 죠의 친구의 배를 격타한다. 그는 정신을 잃고 반쯤 미친 상태에서 광활한 옥수수 밭(유명한 대중부의 옥수수 지평선)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하여 죠와 일레인만이 여행을 계속하는데 하늘을 까맣게 매운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이 집에는 흑인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약간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딸은 죠와 일레인의 사진을 보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알아 맞추고 미래를 예지하며 '두 사람은 강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죠와 일레인이 드디어 뉴욕에 도착해 정착한 곳은 맨하튼 아래에 자리잡은 스테이튼 섬. 버려진 집에 들어앉은 일레인이 '조금의 사생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 다음달 또 다른 초자연적 우연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썰물로 일레인이 사는 집만 작은 섬처럼 둥둥 떠있게 된다. 그래서 뉴욕에 놀러 갈 때는 배를 저어가는 등 현실과 차단된 마치 신선과도 같은 생활을 누린다.

 

36시간 일식이 계속되는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어둠으로 대표되는 이미지 속에서 잠시 서로를 오해하고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가시적인 어둠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들어선다는 것.

 

일레인 역의 에즈테르 발린트는 짐 자무쉬의 로드무비 <천국보다 낯설은>에 나왔던 헝가리 계의 여배우이다. 단지 발린트가 두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 말고도 이 영화가 짐 자무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두서 없는 대화와 필연성 없는 사건이 사회에서 단절된 인물을 통해(소외된 인물은 주로 외국인일 수도 있고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사회 중심 세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다.) 현실 도피성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스타가 무색한 실패작 <생명의 신호>, 비현실적 유토피아 <로뮈알드와 쥘리에뜨>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들을 모아 놓고 혹평을 받고 있는 영화가 있다. <생명의 신호(Vital Sign)>. 일본에서 특별히 인기가 좋은 다이안 레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주목을 받은 로라 산 지아코모, <올드 그링고>로 제인 폰다와 호흡을 맞춘 지미 스미츠 등을 데려다 놓고 참으로도 오랜만에 할리우드 정통 양식의 지루한 영화를 찍었다. 5명의 의사 실습생들이 인턴 과정 중에 겪는 이야기가 중심 소재인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도대체 의사가 뭐하는 사람인가 의문이 갈 것이다. 무스로 정성 들여 발라 넘긴 머리와 매일 아침 수영으로 단련한 단단한 근육-아무리 밤을 새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숙직하는 장면을 보여 주어도 배우들은 의사가 아닌 "영화배우"로만 보일 뿐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큰 사건이 없이 값싼 연애만이 자리를 잡아 언제 끝났는지 모를 정도이다. 가장 총명한 학생인 마이클(아드리안 파스다)와 고참 의사와 사귀고 있던 지나 와일더(다이안 레인)는 지나의 환자가 죽은 날 울적한 심정에서 관계를 가짐으로써 애인이 되는데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가 오로지 외모 때문인 것 같다. 두 사람의 만남을 합리화하기 위해(비록 영화 속에서나마) 어린 소년을 죽인 각본가의 양심이 의심스럽고 두 사람이 약품 공급실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은 너무나도 싸구려 연애 감정이다.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로 신선한 재능을 과시한 꼴린느 세로 감독의 신작 <로뮈알드와 쥘리에뜨>가 파리 극장에서 일반에게 보여지고 있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비극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 프랑스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희극적으로 꾸민 것이다.(배경이 다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에서 영원히 사랑 받는 소재이다.)

 

로뮈알드는 요구르트 회사의 사장으로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아내, 아내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비서 겸 정부, 매일 아침 오는 차(검정색 벤츠)를 타고 등교하는 딸과 아들에 둘러 쌓여 부족한 것이 없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린다. 반면 쥘리에뜨는 그 요구르트 회사의 야간 청소부로서 밤 11시에 출근해 새벽에 귀가하는 고단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그녀의 조그만 아파트를 가득 채운 다섯 명의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일찍이 결혼과 이혼을 다섯 번 되풀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중요해 보이는 것은 로뮈알드는 말끔한 백인 신사이고 쥘리에뜨는 풍성하게 보이는 흑인이다.

 

로뮈알드가 곤경에 처하기 전에는 쥘리에뜨가 야간 청소부 일을 10년간이나 했는데도 한번도 얼굴을 마주친 것 조차 없었다. 그러나, 전무, 이사 등이 짜고 로뮈알드를 사장 자리에서 몰아 내려고 계획을 짬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그들은 음모를 실행으로 옮겨 요구르트에 부패 물질을 첨가한다. 요구르트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오고 이사진들은 사장의 퇴진을 종용한다.

 

로뮈알드는 사면초가의 처지가 되어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게 되는데 그것이 야간 청소부인 쥘리에뜨와 일이 벌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각 방을 청소하며 전화 등을 귀동냥하면서 사건의 추이를 감지하고 있는 터라 얼이 빠진 로뮈알드에게 선언을 한다. "정신 차리세요. 사람들이 사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곳에 있는 지 아세요? 마르세이유로 출장 보낸 블랑쉬에게 전화를 걸어 보세요. 당장 5분만에 달려 올걸요. 부인은 집에 얌전하게 있는 줄 아시나요?"

 

모든 사람에게 속아 왔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로뮈알드는 당분간 쥘리에뜨의 아파트에 머물며(아무도 그곳에 숨었으리라고는 상상치 못할 터였으므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복수를 할 계획을 세운다. 물론 쥘리에뜨의 지대한 공헌 하에.

 

그러나 그는 매우 이기적인 남성으로 쥘리에뜨가 다섯 명의 아이에게 끼어서 자는 것도, 그녀의 세탁기가 고장 나서 그 많은 빨래를 손으로 해야 하는 것도, 한 입을 더 먹이기 위해 식품점에서 음식을 사는 것 등 그 어느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일이 밝혀져 그는 다시 원상복귀 하지만 쥘리에뜨는 큰 아들 에메가 마약 문제로 감방 신세를 지게 되면서 밀린 집값과 더불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들은 로뮈알드가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 아래 희망을 잃지 않지만 그는 미국 출장 중이어서 에메는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그러던 중 로뮈알드가 부인이 회사 직원과 연정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마련된다. 그는 부인에게 화를 내거나 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눈이 멀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쥘리에뜨에게 달려간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당신 밖에 없으니 결혼해 달라면서."

 

그 후의 이야기는 마치 동화의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다. 이는 꼴린느 세로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설 어린 반전이기도 하고 그녀의 평화공존에 대한 이상이기도 하다. 로뮈알드의 전처와 현처가 나란히 임신을 해 사이 좋게 걸어가고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가 어울려 놀고, 심지어 쥘리에뜨의 전 남편 다섯 명도 몰려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럼 과연 세로의 유토피아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로뮈알드와 쥘리에뜨의 사랑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할 만큼 이성적으로도 서로 끌렸을까? 로뮈알드가 자신보다도 훨씬 크고 뚱뚱한 쥘리에뜨의 자는 모습을 엿보는 장면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감독 자신도 확신이 없었던 것 같이 보이는데 막상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설명상 첨가된 듯 3초 만에 지나간다. 결국 이 행복한 결말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히려 복수심에 불타 부인의 연인을 참혹하게 죽이는 인간의 모습이 현실에 가깝다.

 

창녀와 돈이 많은 남자-할리우드의 사랑 받는 소재이다. <프리티우먼>도 신데렐라 범주에 뜨는 흔해빠진 이야기로 얼굴마저 닮은 리차드 기어와, 그와는 달리 아직은 참신한 오스카 조연여우상에 노미네이트된 바 있는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다.

 

로스앤젤레스에 출장 온 에드워드(리차드 기어)는 삼천 불을 주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비비안(줄리안 로버츠)과 1주일을 보내는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 줄거리인데 낭만을 원하는 사람은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돈과 시간을 들인 것을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후회할 것이다.

 

1900년대 마지막 10년의 상반기에 공개된 영화의 주류를 쭉 훑어보면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은 갑작스러운 역사의 변화로 말미암아 현실도피-즉 위기감이 감도는 공포물이나 반대로 이상 사회를 꿈꾸는 비현실적인 코미디로 낙착된다.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1992년에 혹은 1999년에 지구가 그 최후의 날을 맞을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 작가들이 많이 혹은 적게 영향을 받아 말세적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