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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부터의 편지 - 90년, 해피'뉴욕시네마'이어(1990.3)
톰 크루즈 vs 매튜 브로데릭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젊은 배우는 누구일까? <영광(Glory)>와 <패밀리 비즈니스>로 겨울 극장가를 확실하게 제압한 매튜 브로데릭이 아닐까 싶다. <패밀리 비즈니스>는 쟁쟁한 스타들을 모셔 놓고 촬영하느라 바쁘게 찍어진 듯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이 눈에 띄고 숀 코네리는 숀 코네리로, 더스틴 호프만은 더스틴 호프만으로 미처 변신할 틈이 없었다는 인상을 주는데 브로데릭은 예상보다 두 대선배에 눌리지 않고 잘 해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브로데릭도 동시 촬영을 한 탓인지 <영광>에서는 억지로 붙인 콧수염이 어색해 보인다. <영광>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처음으로 조직된 흑인 군대의 이야기인데 흑인들의 연기가 눈이 부시다.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은 뛰어난 연기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순수하게 감동적인 영화이다. 흑인들이 자진해서 군에 입대하고 고된 훈련을 참아내는 모습은 '인간은 인간답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 한다.
스파이크 리가 <옳은 일을 하라>로 영화계를 완전히 들쑤셔 논 89년대. 지난 90년, 흑인들의 목소리는 더 거세지고 영화에서 흑인들이 많은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일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계는 아직도 유색인, 여자 등 금기사항이 많은 보수적인 영역이다.
지난 2~3년간 폴 뉴먼, 더스틴 호프만(우연인지 두 사람 모두 톰 크루즈와의 공연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등 대선배와 작업을 해왔던 톰 크루즈가 '홀로서기' 선언을 했다.
그가 당당히 혼자 주인공을 맡은 역은 올리버 스콘 감독이 월남 귀환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 감독한 <7월 4일생>의 론니 코빅. 7월 4일은 미국 독립 기념일로 미국인의 애국심의 상징이다. 그 날에 태어난 론은 친구들과 전쟁 놀이를 하며 언젠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을 성장하면서 계속 굳혀 나간다. 해군에 자원 입대한 그는 베트남으로 파병되는데 얼마 되지 않아 부상을 입어 브롱크스의 병원에 가게 된다. 정부의 적은 예산으로 말미암아 병원의 상이용사들은 마치 남북시절 당시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고 로니는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2시간 반의 긴 시간 안 불과 20분 정도만이 베트남에서의 일이고 1시간 반이 사고 이후 집에 돌아와 사회에 적응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동료들은 절망감으로 마약에 탐닉하거나 현실 도피로 멕시코 등지에서 술과 여자에 빠져 살아간다. 멕시코 에서 자칭 두목 노릇을 하는 자가 있는데 바로 윌리엄 데포. <플래툰>으로 올리버 스톤 감독에게 은혜진 바 있어 감독의 요청에 선선히 응했다고. 톰 베린저도 론니 고등학교에 해군을 선전하러 온 군인으로 우정 출연하였다. 올리버 스톤 감독 자신도 텔레비전에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는 종군 기자로 잠깐 얼굴을 비추었다. <월스트리트>에서도 주식을 사는 고객으로 나온 후 재미를 들인 것일까. 연기파 배우 톰 크루즈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는 얼굴도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나와서 목이 터지도록 욕지거리를 뱉어 내면서 열연하고 있다. 아주 평범한 미국의 애국심에 넘치는 젊은이를 연기하기 위해 목소리도 예전의 활발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목소리와는 달리 소심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70년대의 모습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잘 재현했다는 것인데 원작을 쓴 론니 코빅과 각색을 한 올리버 스톤의 70년대의 기억에서 비롯된 듯 극중 반전데모를 하는 장소가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모교 NYU다. 전경들이 방독면을 쓰고 각목을 휘두르며 최루탄을 쏘아대는 장면이(우리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후반부에 론이 반전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많이 보여진다. 톰 크루즈는 최근에 사생활에서는 미미 로저스와의 이혼으로 한참 소문이 무성한데 연기자로서는 골든 클로브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는데 성공, 아카데미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듯. <7월 4일생>은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주요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올리버 스톤에게 다시 한번 영광을 안겨 줄 것인가로 미국 영화가에 대단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의 왼발>의 명연, 다니엘 데 루이스 등장
뉴요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로는 뉴욕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나의 왼발(My left foot)>. 작년 1년을 마감하며 뉴욕의 평론가상의 최우수작품상, 최우수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다니엘 데 루이스가 뇌성마비로 왼발 밖에 움직일 수 없는 화가를 연기하는데 그것은 '인간승리' 그 자체이다. 한국에도 <전망 좋은 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차례로 소개되어 다니엘 데 루이스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이 작품이 소개된다면 지명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앞의 두 작품에서 그의 캐릭터는 마이너적인 성질이 강하기에 관객에게 그리 강한 호응을 얻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가 뉴욕의 영화 팬들에게 알려진 것은 아주 시기가 적절했다. 동성연애자로 나온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뉴욕에서 개봉된 1주일 후 <전망 좋은 방>의 보수적이고 꽉 막힌 세실을 보여줌으로써 상반된 연기를 무리 없이 조화시키는 진짜 배우라는 신용을 얻어낸 것이다. 그 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필두로 명실공히 국제적인 배우가 되었고, <나의 왼발>은 최근 작이다. <야바> 등 뉴욕 영화제 중 일반에게 공개된 영화는 이제 자취를 감추었지만 <나의 왼발>이 계속 상영되고 있고 사람들의 놀라움과 관심 속에 뉴욕 근교 십 여 개의 극장에서 보여지고 있는 당당한 메이저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 지난 주 개봉한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똑 소리 나는 영화 <스위티>,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일본 영화 <검은 비>가 모두 뉴욕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이다. 깐느의 그랑프리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짐 자무쉬의 <미스테리 트레인>도 한 극장에서만 보여지고 있다. 원래 그의 영화는 그리 상업적이 아니지만 <미스테리 트레인>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강박관념 <천국보다 낯 설은>, <다눈 바이로>에서 등장인물을 3인으로 완벽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구도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던 데 비해서 주인공을 2인, 1인으로 변화시킨 <미스테리 트레인>은 화면이 짜임새가 없다. 스크린에 세 명이 보이는 순간 만들어 지는 긴장감은 컷이 바뀔 때 바로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Z>로 89년 한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어 놓았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2차 대전 유태인을 탄압하는 전범을 가리는 재판 이야기로 겨울 뉴욕 극장가를 두드리고 있다. 항상 매우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흥미와 추리를 조화시키는 그의 특성은 새 영화 <뮤직박스(Music box)>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90년대 들어 완전히 연기파 배우로 탈바꿈한 제시카 랭(Jessica Lange)이 자신의 아버지를 변호하는 변호사로 나온다. 그녀의 유능함은 재판을 승리로 이끌지만 후에 진실을 알게 된 후 그것을 세상에 공개한다. 제시카의 아들로 누가 나오는 지 아는가? <위트니스>의 귀여운 아미슈 소년 루카스 하스(Lucas Hass)가 검정색 모자를 벗어 던지고 미국의 평범한,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한없이 사랑하는 소년으로 나온다.
1990년도 벽두부터 뉴욕 극장가에는 좋은 영화가 풍성하다. 오늘 조간신문에 의하면 많은 스타들이 점점 맨하튼으로 이사 오고 있다고 한다. 연기자들은 브로드웨이가 가까워 연극을 감상할 수 있고 또 직접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장점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을 십분 활용하는 사람이 있으니 더스틴 호프만과 캐더린 터너. 벌써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호프만은 폭정심을 유발하는 유태인 샤일록으로 현재 브로드웨이 무대에 매일 밤을 새우고 있고 캐더린 터너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봄부터 일반에게 선보이게 된다. 뉴저지가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 작년에 가장 놀랄만한 성장 속도를 보인 것도 뉴욕 영화 산업의 앞날이 밝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