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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뉴욕특파원으로 얻은 수확
말은 부드럽고 소녀티가 나지만 ECHO FILM의 추진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 그녀 자신은 '정확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용기'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의 결단에 가까운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을 갑자기 계기가 되어 사흘만에 유학을 결정했는데 아버지가 상담을 했던 세분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화가, 사십대에 중대 연영과에 들어가신 분, 이런 분들이었다는 거예요. 이구동성으로 빨리 보내야 된다고 하시는 분들과만 상담을 했으니 쉽게 갈 수 있었지요." 덕분에 ECHO FILM은 대학입시에 찌드는 대신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에 보스턴의 섬머 스쿨에서 첫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창작의 길을 걷게 된다. "잘 모르는게 힘이 될 때도 있어요. 고3때는 학교의 이어북 사진기자로 일했는데 그 때 처음 산 카메라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플래쉬가 참 나빠서 충전하려면 오래 걸렸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플래쉬가 터지지 않았어요. 사진에 대해서 알았다면 플래쉬를 좋은 걸로 사면 되는데 워낙 몰라서 화난다. 사진 못 찍겠다. 비디오로 찍자, 그래서 비디오를 다루게 되었거든요." 지금도 소형카메라를 필수품처럼 달고 다니는 그녀는 이런 식으로 한단계씩 자신을 연마해갔다.
이와 더불어 ECHO FILM은 89년부터 국내 영화잡지 <로드쇼>의 뉴욕 특파원으로 일한다. 여고생 소녀 특파원이었던 그녀의 맹활약은 당시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기간 동안 영화를 가장 많이 보았고 많은 유명감독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행운을 누렸다고 회고하는 ECHO FILM은 91년 뉴욕대 영화과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영화를 볼 기회가 적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뉴욕 영화제를 취재했던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아이다호>기자회견에서 만난 리버 피닉스는 자신이 찍은 사진 중 가장 크게 잡지에 실린 대상이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ECHO FILM의 관심은 영화 감독들에게로 집중된다. "흔히 기자들은 스타들에게만 관심을 드러내는데 <아이다호> 때도 제일 많은 질문이 리버 피닉스가 게이 역할을 한 것 등이었어요. 나는 제일 어린 동양인이었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에게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어떼 인서트에 대해서 질문했더니 무척 기뻐하고 반가워하더라구요. 아톰 에고이앙의 <스피킹 파트> 기자회견 때도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초반부 십여분 대사가 전혀 없는 의도에 대해서 질문했더니 감독이 바로 내가 의도한 부분이라고 환호해 주었어요. 이런 식으로 영화 감독들이 뭔가 다른 질문, 자신이 사고하고 의도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걸 굉장히 신선해 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그의 영화와 그 사람됨이 너무 똑같아서 감탄스러운 경우였어요. 너무 논리적이고 뭔가 하나를 질문하면 마치 하루종일 그것만 생각한 것처럼 줄줄 말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