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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서 돌아보는 마음의 영화

 

이 빠른 속도와 질주의 세상에서 멈추어서서 다시 돌아보고 머뭇거리고 후회하는 감정을 진지하고 느리게 붙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패기만만한 실험과 충돌과 파격으로 일관하기 위운 단편영화에서 그런 순간을 만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ECHO FILM 감독의 조용하고 침착한 영화 <스케이트>는 바로 그런 점에서 아주 낯익은 화법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희귀한 체험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스케이트>는 영화를 만든 사람과 영화가 매우 닮았다는 점에서 진자 마음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아주 작고 소박하다. 얼어붙은 샛강. 저멀리서 한 소녀가 스케이트를 메고 한참을 걸어온다. 소녀는 혼자서 스케이트를 지친다. 냇가에 앉아 말없이 소녀를 바라보는 한 소년. 소녀는 멋지게 한 바퀴 원을 그리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다가와 소녀의 팔을 부축해준 소년은 얼음판에 작대기로 글씨를 새긴다. 이름이 뭐니? 보영이. 너는? 그리고 침묵. 잠시 후 소년은 이상한 웅얼거림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문득 겁이 난 소녀는 스케이트도 내팽긴 채 달아난다. 친구와 라면을 먹으면서도 소녀의 마음은 어딘가 편치 않은 것 같다. 한참 후 소녀는 다시 냇가로 돌아온다. 소년은 없고 빈 자리에 스케이트만 놓여 있다. 큰아버지와 돌아오는 소녀 뒤로 샛강은 소년의 마음처럼 덩그라니 보인다. <스케이트>를 채우는 것은 겨울의 빛을 통과하는 수묵화의 이미지들이다. 그 곳에서 보영의 마음과 선한 의도들의 어긋남이 작은 균열을 만든다. 솔직히 이 영화는 세상의 모순과 맞닿아 있는 격렬한 메시지들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작은 상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으로 성찰의 순간에 다다른다. 또한 많은 단편영화들이 '소위 컬트적인 충격적인 소재가 메인 스트림'임을 증명하고 있을 때 주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완고한 미덕을 갖추고 있다.

 

<스케이트> 속에 흐르는 마음은 영화를 만든 ECHO FILM을 거울에 비추듯이 닮았지만 그녀가 영화에로 다가간 과정은 사뭇 도전적이다. 소녀 ECHO FILM은 이미 중2때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길을 정했다. 국민학교 때 혼자서 보러 다닐 정도로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4학년 때 '백설공주'에서 공주를 돕는 까치 역으로 무대에 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연극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무대로서 백설공주는 윤유선, 계모는 이혜영씨가 공연했던 어린이 연극이다. "아직 동숭동 문화가 없을 때라 세종문화회관 별관까지 혼자서 연극을 보러 다녔어요. 무대에 선 것은 한번이지만 혼자 희곡을 써서 삼일절엔 유관순 언니 나오는 연극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초청장 뿌리고 공연하는 식으로 많이 했어요. 그러다 국민학교 때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았는데 영화가 멋진 거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어요. 이 때부터 연극보다 영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2때 같은 감독의 <오델로>를 보고 영화감독은 총체적인 일을 하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국 어린 마음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무지했던 것이 큰 것 같은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어느 정도 몰랐기 때문에 지금가지 추진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딸의 희망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준 부모님도 '너무 어려서부터 영화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사태의 긴박성과 위험성을 미처 모르고 말릴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표현하는 그녀는 자신의 조숙한 결정에 겸손한 자긍심을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