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1997
스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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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시골 큰 아버지네로 와 살게 된 소녀. 혼자 샛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어느 소년을 만난다. 얼음판에 글을 써서 소녀의 이름을 묻는 소년. 소녀는 대답하지만 소년은 대꾸하지 않는다. 소년의 침묵의 이유를 깨닫고 도망치는 소녀. 얼음이 녹을 때쯤 소녀는 그 장소로 돌아온다.

About the Film

나는 처음에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장애인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어색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한 장애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로 인하여 많은 다른 종류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각기 다른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장애로 인하여 겪어야 했던 인생의 골을 미처 이해하지 못함으로 어색하고 미안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촬영 이틀째가 지나서야 보영이가 느끼는 감정이 내 마음속에 풀지 못한 숙제처럼 깊이 남아있었던 안타까움이라는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었다. (조은령)

나오는 사람들

보영 : 양윤미 경희 : 김현정 소년 : 정홍규 큰아버지 : 김영호 동네아이들 : 김정훈, 박상범, 이윤환, 박은규, 강용희

만든 사람들

제작/감독 : 조은령 제작진행 : 김용균 조감독 : 정지우, 박유경, 정지원 기록 : 박여영 동시녹음 : 강봉성 촬영 : 김윤희 촬영보 : 김홍국, 최광식, 남궁정진, 신현수 조명 : 박효훈 사진 : 남원석 수화통역 : 이문범 스토리보드 : 권유리 사운드디자인 : Roland Vajs 음악 : 김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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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양윤미 (보영 역)

1984년 출생 서울 서문중학교 2학년 출연작품 영화 - <축제> 방송 - <엘레지>, <남자 대탐험>, <웃으면서 삽시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lt;TV는 사랑을 싣고&gt;, &lt;베스트 극장&gt;, &lt;강가에 앉아서 울다&gt;, &lt;뮤직랜드 동요 영상집&gt;

광고 - <사생실기> (삼성생명 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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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경희 역)

1984년 출생 오마 중학교 2학년 출연작품 방송 - <TV는 사랑을 싣고>, <스승의 날 특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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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소년 역)

경민 전문대 사무자동화과 졸업 영락 농아인 교회 주일학교 유년부 교사 배우로서의 경험은 없고 <스케이트>는 첫 영화

Crew

김윤희, 촬영감독

1968년 서울 출생 1997년 모스크바 국립영화대학 촬영과 졸업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를 촬영한 A.L. 크냐진스키 교수의 지도를 받음. 현재 중앙대학교 영화과 강사 <무소에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태일>, <꽃잎>, <나쁜 영화> 촬영보 단편영화 <렌즈 PS-105mm> 연출, 촬영 (*여성영화제 출품) 단편영화 <꼬마의 창> (이건동 감독), <꼭지점> (김성숙 감독), <여수의 사랑> (정순애 감독)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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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성, 동시녹음

1970년 서울 출생 1991년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로 영화 입문 <하얀 전쟁>, <첫사랑>, <증발>, <화염경>, <전태일>, <꽃잎>, <젊은 남자> 등 다수

붐(마이크) 오퍼레이터 현재 한지승 감독의 <찜> 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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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 음악

1972년 출생 대원 외국어 고등학교 졸업 뉴욕 맨하탄 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현재 채널 42KCTS 음악효과 담당 영화음악 작곡 <Broken Reed> (조은령 감독) <노래에서> (박유경 감독) *제 4회 서울단편영화제 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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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1. 밖 시골길 낮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시골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인 듯, 마른 갈대가 무성하다.

씬 2. 밖 강가 낮

보영이 (전 씬에서 본 소녀) 혼자 강가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보영이의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보영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보영이가 나뭇가지로 강물을 휘젓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강은 가장자리에만 살얼음이 얼었을 뿐이다. 보영이는 갈대 잎으로 배를 만들어 강물에 띄어보낸다.

제목

씬 3. 밖 외양간 앞 낮

보영이가 마을로 들어온다.

씬 4. 밖 경희네 집 앞 낮

보영이가 집 앞에 앉아있는 경희를 보고 반갑게 뛰어온다.

보영: 빨리 가자. 경희: 나 못가. 보영: 왜? 경희: 엄마가 집에 있으래. (일어나 집 쪽으로 천천히 가면서-frame out) 보영: 엄마 어디 아프셔? 경희: 아니, 집에서 곰부하래. (OS 집으로 들어가며) 보영: 공부는 갔다와서 하면 되잖아. 한 번만 더 물어봐. (문 쪽으로 가며 PAN) 경희: 소용없어. 너 우리 엄마 성질 몰라? 보영: 왜 너가 화를 내고 야단이야. 경희: 너가 그렇게 만드니까 그렇지. 보영: 그래서, 너 약속 깰거야. 경희: 그럼 어떻게 하냐. 엄마가 못 나가게 하는데. 넌 좋겠다.

경희가 문을 팍 닫는다.

씬 5. 밖 샛강 낮

샛강은 한산한 편. 짝을 지어 썰매를 타고 있는 남자아이들. 공놀이하는 아이들. 보영은 한 쪽에서 혼자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한참 열심히 얼음을 지치던 보영, 계속 얼음을 지치는 것에 싫증을 느꼈는지 두 팔을 벌리고 뒤로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시도한다. 보영은 뒤로 돌다가 샛강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소년을 발견한다. 소년과 보영의 눈이 마주친다. 보영, 중심을 읺고 넘어진다. 소년은 그것을 보고 뛰어가 자기 혼자 힘으로 일어서려하는 보영을 도와준다.

씬 6. 밖 샛강 낮

보영, 운동화 신발끈을 다 묶고,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소년을 본다. 소년은 보영과 눈이 마주치자 얼음판에 손가락으로 ‘이름이 뭐니?‘라고 쓴다.

보영이는 생각지 못했던 질문에 모기 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보영: 보영이요.

소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보영이는 자기가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오빠가 못 들었나 하고 다시 말한다.

보영: 최보영이요.

그 때 공놀이하던 아이가 잘못 던진 공이 소년의 등에 맞는다.

보영이는 놀라 일어난다.

소년은 몸을 털고 일어나 미안해하는 꼬마에게 공을 돌려주며 무슨 말을 하는데, 아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보영이는 깨닫게 된다. 소년이 벙어리라는 것을.

(씬 6. 계속) 보영이는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왠지 모르게 겁도 나서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을 친다. 아이는 공을 가지고 친구에게로 돌아가고 소년은 보영이를 본다. 보영이는 뒷걸음치다가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몸을 돌려 도망친다.

씬 7. 안 경희네 집 낮

경희가 라면과 김치를 가지고 들어온다. 보영이는 경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돕는다.

둘은 작은 밥상에 나란히 앉아 라면을 먹는다.

보영: 김치가 너무 시다. 경희: 엄마가 그러는데, 올해는 김장한 다음에 날씨가 너무 푹해서 그렇대. 너 밥도 먹을래? 보영: 아니, 괜찮아.

경희가 그릇을 들어 후루룩 국물을 마시고 내려놓는다.

경희: 보영아, 우리 내일 스케이트 타러갈까? 보영: 아니, 어, 우리 딴 거하고 놀자.

씬 8. 밖 샛강 낮

샛강의 마을 쪽에는 얼음이 드문드문 녹아있다. 보영이 혼자 얼음판 위를 걸어간다. 얼음이 얇아 한 발자국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물이 드러난 곳에는 파장이 인다.

씬 9. 밖 샛강 낮

보영이가 얼음판에 글씨를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하고 있다.

그 때, 멀리서 큰아버지가 보영이를 부른다.

큰아버지: 보영아!

보영이가 돌아본다.

큰아버지: 얼음 지치려고? 보영: 아니요. 큰아버지: 늦었는데 집에 가자. 보영: 네.

보영, 큰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집에 돌아가는 큰아버지와 보영이의 뒷모습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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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감독은 성령님, 나는 조감독일 뿐 - 송도숙

“지금까지 늘 성령께 의지하여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정말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셨습니다.” 오는 5월 13일 개막되는 제51회 깐느 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스케이트’(35mm 흑백, 10분)의 조은령 감독(26)이 밝힌 첫 소감이다. 권위와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스 깐느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스케이트’는 제 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중략>… 당시 심사위원으로 특별초청되었던 왕가위 감독에게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아시아의 좋은 영화를 봤다. 내가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영화라 더 호감이 간다”는 호평을 받았다. …<중략>… 뉴욕에서 만난 장애인 친구를 통해 이미 그런 감정을 경험했던 조감독은 촬영 이틀째 날에야 비로소 보영이의 감정이 자신의 마음속 깊이 남아있었던 안타까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친구를 통해 시작된 조감독의 장애인에 대한 사랑은 뉴욕 밀알 선교단 활동에서 현재 서울 영동교회 사랑부(정신지체장애인부) 교사로까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조감독의 첫소감과 같이 그의 영화제작과정은 ‘여호와 이레’였다. 집사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1년 후에 다시 생각나게 하시고 영상화에 대한 소원을 주신 것이 그 시작. 귀국 후 작업에 들어가서도 장소, 배우, 날씨, 스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인도하셨다.

무엇보다 깐느영화제 초청 소식은 조감독의 두가지 큰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내 장막을 넓혀주소서’라는 기도가 그 가운데 하나. 비용 때문에 자꾸 작아지는 그의 스케일을 하나님께서 깨셨다. 16mm 카메라 대여가 어려워지자 제작비가 두배로 뛰는 것을 감수하며 35mm로 찍어야 했지만 결국 그랬기 때문에 깐느 영화제(35mm로 제한)에 출품할 수 있었고 갑작스러운 함박눈으로 연출된 기가 막힌 풍경도 제대로 담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영화감독으로의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구한 것. “영화를 해야 한다면 내게 증거를 주십시오. 그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이면에 내가 전도하고 봉사할 때 영화만 하는 이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뒤쳐지더라도 나는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증거를 보여주셨지요.”

…<중략>…

미약하지만 <스케이트>가 장애인을 향한 복음의 길을 예배하는데 쓰였으면 좋겠다는, 또 앞으로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복음 전하는 일에 순종하겠다는 조감독. “제 성이 ‘조’가 잖아요? 그것이 너무 감사해요. 성령님이 늘 저의 감독님이시고 저는 조감독일 뿐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그분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 <스케이트>는 곧 서울 단편영화 수상작 비디오로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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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어난 영화같은 이야기

1998년 2월. 조그만 소포를 우체국 창구 직원에게 건네면서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맘으로 이걸 칸느에 보낼 생각을 한걸까? 단순히 영화제에 관한 안내책자에서 ‘칸느’라는 글씨가 유난히 커 보였다는 이유로?’

그 동안 나는 다른 영화제에도 나의 흑백 단편영화 <스케이트>의 필름을 보내왔지만,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겁도 없이 세계최고의 영화제, 칸느라니… 어쨌거나 <스케이트>가 내가 만든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데 바람이 차갑게 몸을 감쌌다.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터벅터벅 걸어서 신문 가판대로 갔다. 백원짜리 몇 개를 내고 신문을 손에 쥐자마자 습관처럼 구직란을 펼쳤다. 까만 지면을 한 번 쓱 훑어 봤지만, 날 원할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듯했다. 그대로 신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렸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배운 거라고는 영화밖에 없는 나. 그러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거의 포기한 지금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엔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초라한 모습일 뿐이었다.

난 중학교 때부터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서 영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영화에 대한 두려움만 가득 쌓인 채 나의 진로를 두고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영화감독이 될 제목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뭔가 딴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껏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일 년 반 전, 이 단편영와, <스케이트>를 찍기로 한 그날부터 나를 감쌌던 흥분과 희열… 오직 영화에만 열중했을 때 느꼈던 만족감… 이 순간도 나와 영화를 이어주는 그 가느다란 감정의 끈을 다시 한번 붙잡을 수 있다면. 그러면 이렇게 주저하진 않을텐데… 그 때가 너무 그리웠다.

“카메라가 없다니요?” “우리나라는 16밀리 동시녹음 카메라를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나마 있는 것도 대여가 된 상태라구요.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질 겁니다.” 뜻밖의 말에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16밀리 동시녹음 카메라를 쓸 계획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제일 중요한 일부터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 애초에 이 영화를 시작하려고 한 게? ’ 난 바로 몇 주전의 상황을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사실, 이번 영화제작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한가지 생각이 발단이었다.

뉴욕대를 졸업하고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미국의 독립영화 조명부에서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 동안 학비를 내느라 돈이 한푼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그만 내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번뜩 떠오른 생각에 난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영화를 찍어야 겠어!’

그날로 곧장 미국에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와, 이곳 서울의 충무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일이 처음부터 꼬이다니.

“웬만하면 35밀리로 찍지 그러세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35밀리 카메라로 스펙터클한 영상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면 제작비가 두 배 이상 오른다. 조명일을 하면서 모든 돈으로 소극장 상영용인 16밀리 영화밖에 찍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부담이 너무 컸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스텝도 모였고, 일을 벌여 놨는데, 이제와서 포기를 선언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야.’ 게다가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과 함께 동시에 떠오른 그 시놉시스만큼은 꼭 살려보고 싶었다. ‘한겨울 샛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한 소녀. 빙글 돌다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한참을 지켜보던 한 소년이 다가와 소녀를 일으켜 준다. 소년은 나무 막대기로 얼음 위에 글씨를 쓴다. ‘너 이름이 뭐니?’ “보영이요” 그러나 소년은 알아듣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로 웅얼거린다. 소년이 청각장애인임을 알게 된 소녀는 당황해서 스케이트를 버려둔 채 황급히 달아난다. 나중에 소녀는 미안한 마음에 샛강으로 돌아와보지만 소년은 없다. 스케이트만 남아있을 뿐.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펼쳐지는 흑백의 영상들… 이제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아니, 그래선 안될 것만 같았다. 함께 있던 스텝들을 바라보며 난 말했다.

“좋아요. 35밀리로 합시다!”

촬영장인 여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난 계획보다 일이 커져 버린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35밀리 필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살리는 일뿐이었다.

‘그러려면 눈이 꼭 내렸어야 하는데…’ 나는 몇 번이고 시나리오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눈이 내린 샛강의 풍경과 삭막한 맨땅 그대로인 풍경은 영상적인 효과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단순히 멋진 풍경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 없이 큰 아버지와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보영이의 마음을 사건이 아닌 영상과 소리, 음악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미지와 어우리는 배경 설정이 필수적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창밖 풍경은 메마른 겨울 농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촬영지에 거의 다 이르러서도 눈이 쌓인 곳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바심만 더해 갔다. 얼마 후, 멀리서 샛강이 보일 때쯤 누군가 소리쳤다.

“와∼저기 봐요!” 그 소리에 다들 일제히 창문에 바짝 붙어 환호성을 질렀다. 내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샛강 주위에만 소복히 쌓여 있는 하얀 눈! 그 하연 눈밭이 저 멀리 야트막한 산등성이까지 죽 뻗어 있었다. 누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소담한 마을과 샛강을 오가며 우린 촬영으로 여념이 없었다.

“자. 소녀, 좀더 자연스럽게 넘어져야 해!” “홍규는 시선을 이 쪽으로!” 그러자 얼른 수화통역사가 손을 움직였다. 홍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고정된 화면 안에서 소녀는 몸을 빙글 돌리다가 넘어지고, 멀찌감치 앉은 소년에게로 화면이 옮겨 간다.

“컷! 좋아요.” 만족스러웠다. 스텝들도 호흡이 잘 맞았고,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아역배우들도 그만하면 기대 이상이었다. 대학시절, 단편영화를 하나 찍으면서 스탭들 한사람 한사람과 부딪혀야 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진행이 너무 순조로워 오히려 괜히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괜한 걱정을 다 하다니.’ 막바지로 접어든 촬영 사흘 째, 아침 일찍 두터운 잠바에 목도리를 칭칭감고 민박집을 나서는데, 차가운 것이 얼굴에 닿았다. 눈이었다.

“서둘러야 겠어요. 눈이와요.” 촬영기기를 챙기던 스텝들에게 이르고는 먼저 나섰다. 아직 찍지 못한 장면들은 눈 내리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눈이 오면 장면이 앞뒤가 맞지 않아 곤란했다. 그렇게 반갑던 눈이 지금은 짜증스럽게 느껴지다니. 샛강에 도착해 서둘러 짐을 풀고는 한 장면이라도 찍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시야를 가리며 펑펑 쏟아졌다.

“컷!” 중단하는 소리에 스탭들이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쩌죠? 이런 상태로는 무리겠어요.” 스탭들의 이야기를 듣고 뿌연 잿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음은 급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죠. 우선 점심을 먹으면서 좀 기다려 봅시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여럿이 방 안에 둘러 앉았다. 옆에서 건네 주는 따뜻한 국물 그릇을 받아 들고는 꽁꽁 언 손가락을 녹였다. 앞으로 남은 빠듯한 일정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눈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 순간, 따뜻한 국물에서 김이 피어 올라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 내리는 장면을 살려보면 어떨까?’ 얼마 후, 다시 샛강에 진을 쳤다. 눈발이 날리는 사방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카메라를 고정시켜 오랜 시간 장면을 찍는 롱테이크로 풍경을 감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나서 난 힘있게 외쳤다.

“스탠 바이 큐!” 그렇게 나흘간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 음향과 편집의 후반작업을 마쳤다. 음악은 중학교 때 친구가 맡아 주었다. 음악을 아주 좋아했던 그 친구에게 난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이담에 영화 감독이 되면, 네가 영화 음악을 만들어 줘.” 마침내 마스터 필름을 손에 들었을 때 난 깨달았다. 우리들의 약속이 이제 이루어졌다는 걸. 더불어 우리들의 소중한 꿈도 이루어졌음을.

우체국을 뒤로 하고 걷던 걸음을 멈췄다. <스케이트>의 잔상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었다. 내겐 그 때 느꼈던 영화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아니, 내 인생을 걸어도 후회없을 만큼 더 강한 확신이!

우체국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더 이상 신문을 뒤적이지 않았다. 대신 내 인싱에 대한 답을 얻고자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 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어떤 삶이든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에 대한 주님의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누가봐도 확실한 답으로 말입니다.’ 3일 후였다. 팩스로 전송된 종이들을 집어들고는 무심코 넘기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 중에 끼어 있던 서신 한 장을 빼 든 손이 덜덜덜 떨렸다. 발신인은 바로 ‘칸느’였다. 거기에 써 있는 글자 몇 개가 눈물에 가려 흐려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칸느에 가게 되다니!

지난 5월 나는 <스케이트>의 영화 감독으로 정식 초청을 받아 프랑스 칸느로 갔다. 그것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칸느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영예를 안고서. 사실 35밀리 필름으로 찍지 않았더라면 칸느엔 출품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미지와 어울리는 설경. 그리고 롱테이크를 쓴 눈 내리는 정적인 화면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평가들은 이렇게 호평했다. 내 인생의 진로에 대한 물음에 이보다 더 분명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엔 일이 꼬이는 것만 같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든 일들은 이 순간을 위해 예비된 것이었다. 한 기자가 내게 묻는다. “조감독,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까?” 그가 나를 부른 호칭에 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난 내 인생과 영화에 있어서 늘 조감독일 것이다. 감독은 영원히 그 분의 자리일 테니까.

올 겨울엔 샛강에 나가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