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의도
‘낙태’에 대한 주제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제일 처음 낙태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미국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미국 학교에서는 토론(debate)을 많이 시키는 것이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다른 점이었는데 토론의 주제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낙태 문제였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해도 끝이 없고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의 제목으로 ‘과외’를 떠올렸었는데 미국에서는 과외는 이슈조차 되지 않고 낙태가 가장 뜨거운 토론의 제목이 되는 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과연 낙태에 관한 문제가 미국보다 더 적은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1996년 낙태반대운동연합에서 주최한 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낙태에 관한 실상과 현실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기회가 되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한 사람의 생환에 그렇게도 감격해하며 생명의 고귀함 운운하는 우리들이 같은 나라에서 하루에 4,300여명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이중성과 모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수치로 보면 우리 나라는 전세계 1, 2위를 다투는 낙태 천국이라고 한다. 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는 100만명 정도인데 비해 엄마의 자궁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태아들은 그 두 배인 200만명 정도에 이르른다고 한다. 우리 나라는 특히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태아의 성을 검사해 딸이면 지우는 경우가 많아 둘째, 셋째의 남녀 비는 자연적인 상태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에도 남자 애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남녀공학이었는데도 ‘홀아비 반’이라고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특수학급이 생겼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낙태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낙태반대를 홍보하기 위해서? 낙태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해서? 는 더더욱 절대로! 아니다. 나는 더 큰 의미로서의 ‘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인간의 양심은 한계가 있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지만 절대자의 변하지 않는 법 앞에 섰을 때 한 사람의 행동이 심판 받고, 다른 사람의 유사한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 질문을 인물들의 삶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더 가깝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고 싶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의 화법은 최대한 미사여구를 자제하고자 의도한다. 내가 어떤 시점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있는 그대로라고 관객들이 느끼도록 다큐멘터리같은 접근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그런 생각의 선상에서 카메라 움직임, 조명 디자인, 분장, 의상을 포함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들이 결정될 것이다.
연출의도
우리는 얼마 전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사건에 대하여 들었다. 언론은 분노, 경악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고 사람들은 충격과 부끄러움으로 휩싸였다. 그 다음 날 신문에서는 손가락이 잘린 소년을 돕기 위하여 온정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고 경남도지사와 마산시장도 그 소년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生>은 원래 3년 전쯤 구상했던 이야기지만 그 동안 여유도 없었고 영화화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묻어두었던 시나리오였다. <스케이트> 개봉을 전후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들추어내게 되고 다시 고쳐 썼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이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생 손가락 절단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한 것은 김포공항에서였다. 6년이 넘게 살았던 뉴욕에 귀국한지 2년만에 처음으로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기 바로 직전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손가락이 잘려진 아이에 대하여 들으며 태어날 수 없었던 아이들을 생각했다. 잘려진 손가락을 보며 팔과 다리와 머리가 갈기갈기 찢긴 태아의 모습이 내게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손가락이 잘린 소년에 대하여 진실로 마음 아파하는 나를 보며 생명을 빼앗긴 아이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마음을 가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것만을 좇고, 보이는 것만을 숭배하는 이 세상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은 가장 소중한, 지금 만질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생명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짧은 영화를 통하여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Synopsis
혜정과 동훈에게는 지민라는 6살 된 딸이 있다. 혜정은 미장원에서 일하고 동훈은 회사에 부도가 나 실직한지 6개월이 넘어간다. 혜정은 지민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미술학원에 보내고 피아노학원에도 보내고 싶어한다. 동훈이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민를 미술학원에서 데려오기로 하지만 동훈은 부주의하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혜정은 학원 선생님에게 눈치가 보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혜정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혜정으로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동훈의 실직상태와 지민 하나 키우기에도 쩔쩔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낙태를 하기로 결심한다. 지민를 더 사랑하고 더 잘 키울 것이라고 마음을 먹으며.
임신 초기였기 때문에 낙태수술에는 시간이 5분여 밖에 소요되지 않았지만 그 다음날 하혈이 멈추지 않고 몸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일을 나가지 못한다. 이웃집 아줌마가 지민를 유치원에서 데려다주시면서 혜정을 보고는 너무 열심히 일만 해서 그런 거라고 푹 쉬라고 말한다. 그날 저녁에도 동훈은 일찍 들어오지 않고 혜정과 지민 둘이서만 저녁 식사를 한다. 늘 습관처럼 틀어놓은 텔리비젼에서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기자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던 ooo양 유괴사건의 범인이 경찰에 검거되고 ooo양은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고 보도한다. 식사 후 지민는 만화를 보고 혜정은 설거지를 한다.

나오는 사람들
혜정 : 이은숙 남편 : 정규수 지민 : 이지민 선생님 : 정윤경 애리 : 이효숙 약사 : 홍경연 주인아줌마 : 김민아 이웃아줌마 : 손춘선 특별출연 : 최용민, 오윤홍
만든 사람들
시나리오, 연출, 편집 : 조은령 촬영 : 황기석 조명 : 윤용아 동시녹음 : 강봉성 사운드 디자인 : 김석원 아트디렉터 : 한혜정 분장 : 윤달님 소품 : 김익겸 조감독 : 정지원 연출부 : 김효진 기록 : 조영숙 타이틀 디자인 : 함인희 스틸 사진 : 박정호/이성호 제작진행 : 임병선 촬영보 : 박상훈/이동주/기세훈 조명보 : 강대희/홍기철/서이봉 녹음보 : 김영종 네가편집 : 김선민 음악 : 좋은 씨앗



암흑. 태아의 심장 박동 소리. 타이틀 천천히 떠오른다. 生 도시의 소음이 심장의 고동을 죽인다.
S #1 실외 횡단보도 앞 이른 저녁
신호등의 파란 불이 깜박거린다. 혜정(30대 초반), 길을 건너려고 급히 뛰지만 신호등은 빨간 불로 바뀌고 자동차가 혜정 앞을 막는다. 혜정,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마음이 바쁜지 신호등과 오가는 차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신호등이 드디어 파란 불로 바뀌었는데 횡단보도를 차들이 점령하고 있다. 혜정은 차들 사이로 바삐 뛰어간다.
S #2 실내 미술학원 계단 이른 저녁
혜정이 좁고 긴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간다.
S #3 실내 미술학원 이른 저녁
텅 빈 유치원에 지민(5살)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혜정: 지민아! 지민: (혜정에게 뛰어와 안기며) 엄마! 혜정: 지민아, 엄마가 미안해. 지민: 괜찮아. 미술학원 선생님, 옆 방에서 나온다. 미술학원 선생님: 이제 오셨어요? 혜정,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본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데도 혜정은 고개 숙여 인사한다. 혜정: 선생님,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민이가 가지고 놀던 크레파스를 제 상자에 넣는다. 혜정: 정말 죄송합니다.(몸을 일으키며) 애아버지가 오늘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지민이 어머님, 이렇게 늦으시면 안 되죠. 저도 제 생활이 있는 사람인데, 지민이 하나 때문에 제가 가지를 못하잖아요. 혜정: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혜정. 지민이 옷을 입히지도 못하고 총총히 미술학원을 나선다.
S #4 실외 집으로 가는 골목 이른 저녁
혜정, 지민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넓지 않은데 빽빽하게 주차되어진 차들로 인해 더 좁게 느껴진다. 문방구 앞 전자오락기 앞에는 사내아이들 몇 명이 앉아서 버튼을 손이 안 보이게 눌러대고 있다. 혜정: 지민아, 유치원에서 무슨 노래 배웠어? 지민: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애기곰은 너무너무 귀여워. 으쓱으쓱 잘 한다. 으쓱으쓱 잘 한다. 혜정: 야! 우리 지민이 노래 잘하네.
S #5 실외 집(계단) 이른 저녁
혜정, 지민이와 함께 골목을 돌아 좁은 문을 들어선다. 지민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지민: 옛날 옛날에 개미 한 마리 뚝 떨어졌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개미야, 개미야, 얼마나 아프니? 혜정은 2층에 세 들어 산다. 2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밖에 따로 나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은 그 계단이 참 길게 느껴진다. 혜정과 지민,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1층 문이 열리면서 주인 아줌마(50대) 가 나온다. 집주인: 지민이 엄마로구나! 지민: 안녕하세요.. 혜정: 안녕하세요. 혜정, 지민을 데리고 계단을 올라간다. 집주인: 지민이 엄마. 혜정, 뒤돌아본다. 혜정: 네. 집주인: 이번 달에는 집세를 좀 제대로 줄 수 있겠수? 혜정: 네. 집주인: 우리 애한테 돈을 좀 부쳐야 되거든… 혜정: 아, 네.
S #6 실내 혜정 집 이른 저녁
혜정과 지민 현관을 들어온다. 지민: (신발을벗으며) 지퍼 다 내가 했어! 혜정: 어, 잘했어. (지민의 신발을 마저 벗기며) 으쌰. 집에는 아무도 없다. 방 안에는 이부자리와 벗어놓은 옷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텔레비젼 앞에 담배가 수북히 쌓인 재떨이와 빈 맥주 캔이 있다. 맥주 캔 옆에는 고추장이 담긴 종지와 마른 멸치, 오징어가 있다. 혜정, 이불을 개키고 옷을 접어 옷장에 넣는다. 지민이는 텔레비젼을 켜서 본다. 텔레비젼 옆에는 지민이의 귀여운 모습의 독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혜정은 음식 나부랭이를 부엌으로 가져오고 재떨이는 쓰레기통에 비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혜정. 문소리가 들리고 태준(30대 후반), 술에 취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태준, 혜정과 눈이 마주친다. 태준: (신발을 벗고 들어오며) 지민아, 지민아. 혜정: 식사는요? 태준: 음.. 먹었어. 태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닫힌 문을 바라보는 혜정.
S #7 실내 혜정 집 방 밤
태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TV의 스포츠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혜정, 문을 열고 빨래감을 가지고 들어온다. 혜정, 빨래감을 내려놓으면서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무릎이 아프다. 긴 하루였다. 혜정, TV에 시선을 잠깐 주지만 그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빨리 빨래를 다 개고 쉬고 싶다. 혜정: (빨래를 개키며) 오늘 누구 만났어요? 태준: 바람 좀 쐬고 왔어.(담배를 피우며) 혜정: 낮에 드시고 또요? 태준: 사람 만나면 마실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혜정: 몸도 안 받는데 많이 드시니까 그렇죠. 근데, 아까 지민이 미술학원에서 데려오는 거 잊어버렸어요? 태준: (몸을 일으키며) 밖에 있어서 깜빡 했어. 혜정: (한숨) 미술학원 선생님한테 너무 너무 죄송했어요. 우리 지민이 혼자만 남아있는데… (긴 한숨을 쉰다.) 태준: 학교도 안 들어간 애를 무슨 학원까지 보내고 그래. 혜정: 당신은, 요즘 애들은 다 해요. 우리 지민이 피아노 학원도 보내야 되는데… 태준, 담배를 챙기고 잠바를 들고는 나가려고 한다. 혜정: 여보, 여보, 추운데 어디 가요? 태준, 대꾸하지 않고 나간다. 혜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의 문이 닫힌다.
S #8 실내 미장원 낮
손님의 머리를 드라이하고 있는 혜정. 미장원 옆에 붙어있는 피아노학원에서 서투른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혜정의 손놀림은 익숙하고 빠르지만 혜정의 얼굴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뒤쪽에서는 애리가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옷에 묻어 꾸덕꾸덕 굳은 하얀 파마 약을 물 묻힌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다. 애리, 옷을 대충 닦은 후 롯트를 색깔별로 분리해 고무줄로 묶는다. 손님은 피곤한 듯 눈을 꼭 감고 있다. 혜정, 앞머리를 드라이한다. 드라이를 끝내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손님: 아우, 머리 타요. 혜정: 예, 죄송합니다. 혜정, 앞머리를 마무리한다. 혜정, 거울 속의 손님의 모습을 확인한다. 혜정: 스프레이 좀 뿌려드릴께요. 손님: (가운을 벗으며) 스프레이 안 뿌리셔도 되요. 혜정, 빗을 챙기며,장부에 기입을 한다. 애리, 옷장에서 손님의 옷을 꺼내고,가방을 건넨다. 손님, 왠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백에서 지갑을 꺼낸다. 손님: 여기요.(손님,혜정에게 돈을 준다.) 혜정: 예, 참 손님 저번에 드라이 한 것 돈 안주시고 가셨는데… 손님: 제가 언제 그랬어요. 빨리 거스름돈이나 주세요. 혜정,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준다. 손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간다. 혜정: 안녕히 가세요. 애리: 안녕히 가세요. 애리, 가운을 정리한다. 혜정, 돈을 서랍에 넣으며, 겉옷을 가지고 나온다. 애리: 언니, 배고파 죽겠다. 빨리 밥먹자! 혜정: 잠깐 나갔다 올께. 애리: 밥 안 먹어? 어? 혜정: 머리가 아파서. 애리: (나가는 혜정을 보며) 머리 아픈 거랑 밥 먹는 거랑 뭔 상관이야?
S #9 실내 약국 낮
혜정, 약국에 들어선다. 약국의 텔레비전에서는 홈쇼핑이 방영되고 있다. 약사(30대 중반)는 난로 옆에 앉아 있다. 약사: 왜, 지민이 아빠 아직 감기 안 떨어졌어? 혜정: 아니요, 거의 나았어요. 약사: 에이, 지민이 엄마가 감기 옮았구나. 혜정: 아니요… 약사: 그러게, 내가 비타민 C하고 철분 좀 먹으라고 했잖아. 여자 나이 서른이면 내리막길이 야. 혜정: 저.. 집에서 임신 혼자 확인하는 것 좀 주세요. 약사: 지민이 동생 생기는구나. 아들이면 좋겠다. 혜정: 형편이 되야 낳죠. 약사: 하긴, 요즘 지민이 아빠 일자리 좀 보러 다녀? 혜정: 그게 어디 쉬어요? 약사: 아참∼ 며칠 전에 내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백화점에서 경품주는거, 왜 냄비세트 같은거 주는거 있잖아 그 대신 직장을 구해주는 게 있다고 그러더라고, 거기 한번 가 보라고 그러지. (혜정의 표정을 보고) 아이 뭐! 갑자기 생각나서 한 얘기야. (약을 건네주며) 결혼한 여자가 뭐 그거 한번 안 해 본 여자 있어?
S #10 실내 지민이 방 밤
지민이의 방은 넓지 않지만 꾸미는데 많은 정성을 들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커텐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색이고 침대 머리맡에는 크고 작은 인형들이 놓여져있다. 한쪽에 있는 키작은 책장에는 동화책이 꽤 많이 꽂혀있다. 지민이는 잠옷차림이고 혜정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다. 지민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삐뚤삐뚤하게 원을 그리고는 눈과 코를 그려넣는다. 혜정: 이게 뭐야? 지민: 사과. 혜정: 사과에 눈도 있고 코도 있네. 지민, 웃는다. 혜정: 우리 지민이, 그림도 잘 그리네. (그림 도구를 치우며) 지민아 이제 자야지. (지민이를 눕히며) 으쌰 올치! 지민,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눈을 꼭 감는다. 혜정: 지민아. 지민, 눈을 뜨고 엄마를 쳐다본다. 혜정: 엄마가 지민이 정말 사랑해. 지민: 나도. 혜정, 지민의 이마에 뽀뽀한다. 혜정: 코 자∼ 혜정, 일어나서 램프 옆으로 간다. 불 끄기 전, 지민이의 얼굴을 본다. 혜정, 지민이 방의 불을 끈다. 암전.
S #11 실외 산부인과 앞 길 오후
혜정이 어떤 건물에서 나온다. 혜정의 발걸음은 지쳐 보이고 힘이 없다. 혜정은 땅을 보고 걷는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옷깃을 추위에 움추려 자기가 가야 할 곳을 바삐 가고 있다. 그 때 혜정, 중년의 어떤 남자와 부딪힌다. 혜정은 미안하다고 말할 생각으로 그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 아이 뭐야! 바빠죽겠는데… 씨! 혜정, 얼이 빠진 듯 그 자리에 서 있는다. 혜정의 모습은 너무나 작다.
S #12 실내 혜정 방 밤
혜정, 벽쪽으로 돌아누워있다. 문이 열리고 태준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태준, 방으로 들어와 혜정 옆에 눕고 혜정의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는다. 혜정, 태준의 손을 뿌리친다. 혜정: 그냥 자요. 태준, 혜정에게서 몸을 떼고 바로 눕는다.
S #13 실내 화장실 오후
혜정, 변기 위에 앉아있다. 혜정의 얼굴은 혈색이 없고 창백하다.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는 듯 신음소리. 한 손으로 그 부위를 만지며 얼굴을 찡그린다. 혜정, 일어나 변기의 물 내리는 손잡이를 내린다. 씻어 내려가는 물에 피가 섞여있다.
S #14 실내 방 오후
혜정,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눕는다. 불편한 듯 이리저리 뒤척거린다. 혜정이 베고 있는 베개가 혜정의 눈물로 적셔진다. 현관문 노크소리. 혜정: 예..예, 누구세요? 아줌마: (소리만) 어, 옆집 아줌마야. 혜정: 네. 혜정,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나간다.
S #15 실내 문 앞 오후
혜정, 문을 연다. 지민이와 옆집 아줌마 지민, 엄마에게 매달린다. 지민: 엄마! 혜정: 고마워요, 아줌마. 아줌마: 그걸 가지고 뭘 그래∼ 푹 쉬어. 아줌마, 혜정을 방에 가서 쉬라고 밀고는 총총히 나간다.
S #16 실내 방 밤
혜정과 지민이가 식사를 하고 있다. 지민, 밥 먹다 말고 텔레비젼 앞으로 간다. 텔레비젼에서는 만화가(열려라 꿈동산) 방영되고 있다.
혜정: 지민아, 마저 먹어야지. 혜정, 숟가락에 지민이 밥공기에 남아있던 밥을 담아 지민이 입에 넣어준다. 지민이는 텔레비전 앞에 가까이 앉아서 만화를 본다. 혜정, 밥상 앞에 다시 앉는다. 혜정의 밥공기에는 밥이 1/3 정도 남아있다. 혜정, 숟가락을 들었다 놓는다. 밥상을 들고 나간다.
S #17 실내 문 앞/부엌 밤
혜정, 밥상을 부엌으로 들고 가 그 밥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식탁 위의 수저와 그릇들을 싱크대로 가져간다. 설거지를 하는 혜정의 뒷모습이 우리에게 보인다.


“스타일은 갈아입는 옷”
단편영화<생>의 조은령 감독
강가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소년 소녀는 어느덧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여자의 모습으로 되어 우리를 찾았다.
단편영화 <생>의 감독 조은령(27).
그의 전작<스케이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생>은 참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스케이트>는 흑백의 아련한 풍경. 즉 회상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생>은 제목 그대로 더 이상 미화될 여지가 없는 현실을 다룬 작품입니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거의 없고 조명도 형광등 빛 그대로의 푸르스름함을 살렸어요. 장소도 실제 다세대 주택을 빌려 내부를 꾸몄구요. 전작과 너무 다르다구요? 저는 어떤 스타일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따라 스타일은 가변적인 옷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주 영화제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이라면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이었다고 말하는 조 감독에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잦은 영사사고나 관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극장시설이었다. “처음이니까 시행착오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에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작년 봄에 <생>의 후반작업을 마치고 변혁 감독의 <인터뷰>의 다큐멘터리 부분을 돕느라 자유의 몸(?)이 된지 얼마되지 않았다며, 단편이든 장편이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차기작을 만들 수 있기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단편은 감독과 국화빵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동심의 소녀도 생에 지친 여자의 모습도 그저 단아해만 보이는 그의 얼굴 어딘가에 숨어있는 조은령의 모습이었다.
- 씨네 21 손흥주 2000. 5.


S# 12 EXT. 산부인과 앞 길 Afternoon
- impressions, thoughts, images, associations
길에서 부딪힌 남자. 처음에는 어떤 symbolic 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혜정(의 class를)억압하는 patrearchal 한 사회를 represent 할 만한 인물 casting 이 가능한, 아는 사람중에서 생각했을 때, 000사장님과 ***의 사장님을 생각했다. 혜정을 overwhelm 하고 무시하고 누르는 사회를 represent 하는 image. NY에 갈 때 공항 KAL check in counter에서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이 perfect 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줄 서지 말라고 막아 놓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국인답게 뻔뻔하게 카트를 턱 대 놓고 버티고 있었다. 대한항공 직원이 한번 말할 때도 전혀 꿈적하지 않다가 몇 번 거듭말하고 computer 에 문제가 있다고 하자, 더럽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카트를 밀고 갔다. 원칙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려가 전혀 없는 사람. 자기 갈 길이 바쁘고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만이 중요한 사람.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연극 <주인 푼필라와 하인 마티>를 보면서 였던 것 같다.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닌, 서로 부딪히며 사는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어쩌면 더 슬픈..
<푼틸라 -> 초반에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 그 중 곱슬머리 character 아내가 아주 건강하고 남들이 하루 걸릴 빨래를 한나절이면 해치운다고 자랑하던 사람. 하지만, 실제로 그의 아내의 건강은 어떨까? 어쩌면 그 전에는 그렇게 일 잘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너무 무리해서 건강이 나빠져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딸들은?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집안의 어두움과 궁핍함에 반항하며 밖으로 나돌아 다닐지도 모른다.
drunk. 푼틸라는 술을 offer했지만 일은 주지 않았다. 그 곱슬머리 남자의 푼틸라를 향한 솔직한 심정 욕이 나오고 원망과 자기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지는 데 대한 씁쓸한 감정. 가슴이 텅 비고, 남자로서 존재가치가 없게 느껴지는. 그렇게 힘들게 걸어 마을로 다시 돌아와 술을 더 마셨을 지도 모른다. 속이 너무 타서. 갈증이 나서. 이런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어떻게 맞을지? 그 때 혜정과 부딪힌다. 이런, 눈은 뭐에다 쓰려고 달고 다니는 거야. 정신 나간 년.
- Givens
산부인과 앞 거리. rush hour - 보도에 보행자가 많은 편이다. 수술 후 3∼4시간 후
<정맥 마취> 수면제 + 진통제 15∼30분 동안 통증을 못 느끼고 잔다. 완전히 무의식적인 상태는 아님. 아래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낌. 통증도 느낌. 견딜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지면 얼굴을 찡그린다. 마취에서 깨면 어지럽다. 혼자 못 일어난다. 회복실에서 3∼4 시간 자고 일어난다. 자는 동안 영양제(링겔 : 포도당) 3∼4시간 맞는다. 막 자고 일어난 모습(머리 헝클어지고 옷도.)
돈을 내고 나왔음.(20만원 정도?) 집에 가서도 자고 가사 일은 못한다. 아랫배의 통증 출혈 - 생리 끝날 때 나오는 것 같은 거무 칙칙한, 고여있다가 나오는 경우 특별히 더 점성이 있지는 않다.
<Place> It’s relation to theme and characters
산부인과 - It’s supposed to be a palce where babies are born, new lives begin
in reality, however. 출산 수당이(수지가) 낮다는 이유로 동네 개인 산부인과에서는 아이를 안 받는 곳이 많다고 한다. 출산을 위해 동네 산부인과에 3군데를 다녔는데 다 거절당해 너무나도 민망하고 죄스러워하는 임산부 vs 낙태하러 끼리끼리 몰려와 너무 떳떳한 여고생들. 경제논리가 생명의 가치를 짓밟은 사회.
- Theme
Metaphor - thematic point of view
경제논리가 생명을 죽인다. 돈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고 더 immediate 하게 느껴지는 경제논리를 하나님의 법보다 더 존중하는. 하늘은 죄로 인해 구름으로 덮혔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들은 인관과의 관계에서도 서로 밀고, 차고, 짓밟는다.
실제적으로 이 scene 의 visual 이 blue tone 으로 가야할지 or gray tone ? 인물들의 의상은 무채색 - 검정, 회색 용민 아저씨는 안경을 끼여야 할까? - 뿔테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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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by-Step outline(the nature of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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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이 산부인과에서 나온다. (inner conflict - 죄책감, 과연 이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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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기운없이 땅을 보고 걷다가 어떤 남자와 부딪힌다. (outer conflict physically manife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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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얼굴을 드는데, 이 남자는 ‘이 여자 정신 나간 거 아냐?‘하는 표정으로 혜정을 쳐다보고는 자기 갈 길을 간다. conflict between characters 서울에서는 워낙 사람들이, 많고 어디론가 바쁘게 급히 걸어 다니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잦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더럽게 기분 나쁘다는, 마치 벌레 씹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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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s (beginning, middle, resolution)
혜정이 산부인과에서 나온다. 아이를 지우는데는 5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상처는 -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 평생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길거리의 수 많은 사람들. anonymous(얼굴이 보이지 않게 “의미없이”스쳐지나가게 shoot) They’re so busy trying to get wherever they’re going.
아랫배가 아프고 하혈도 있고 마취 후(수술 후) 3∼4시간 자고 바로 깨어나 집에 가 눕고만 싶다. 하지만, 집까지의 길은 길게만 느껴진다. 땅을 보고 걷던 혜정, 어떤 남자와 부딪힌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혜정. 남자와 부딪혀 움찔 놀란다. (자신의 생각이, 행위가 들킨 것 같은 느낌. feeling of shame, regret, guilt) 혜정은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그 남자를 쳐다본다. 그 남자는 혐오의 눈길을 짧게 주고 자기 길을 간다.